1일
안녕하세요.
제가 사는 곳은 요즘 막 가을이 왔습니다. 차를 달리며 보이는 풍경은 널따란 들판이 노란색으로 익어가는 장면입니다. 거창한 말이 우습기도 하지만 저는 오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벌써 10월이에요. 1년의 끝이 다가오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실제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동생이 일을 하러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단 소식을 들었어요. 세계 보건을 위한 기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네요. 평소 관심 있고 하고 싶던 일을 현실로 그려나가는 그 친구가 참 멋지고 대견합니다. 동시에 그를 바라보는 제 마음에는 해갈이 일었어요. 저는 매일의 일상에 체념된 채였거든요. 저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그게 죽이는 생각이 아니라 살리는 생각이길 바라고 있어요. 그 생각들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도착하여 고이기 시작하면 오늘이란 날에 먹구름이 끼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 말한 적 있던가요? 저는 수의사입니다. 주로 아픈 동물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있어요. 하지만 동물 못지않게 사람을 상대하는 일입니다.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말주변도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이 일의 끝은 무엇일까요? 어디가 끝이고 언제쯤일까요? 이러한 생각들은 제 하루를 조금씩 체념시켰어요. 그러다가 발견한 창 밖의 들판과 동생의 아프리카행 소식은 괜스레 인생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신은 사랑에 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사랑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제가 아직 아무 행동도 그에게 하지 않은 사람이 이유 없이 저를 싫어한다는 걸 느낄 때처럼요. 그런 경우가 살다 보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제가 아무리 예쁜 짓을 하더라도 저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도록 미워합니다. 동시에 사람은 사랑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깁니다. 사랑의 반대편에 선 사람은 미움을 사랑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반짝이는 걸 사랑하죠. 그렇기에 말 한마디 해 본 적 없이 처음 본 상대를 사랑해 버리기도 합니다. 마음이란 건 참 그래요. 실체가 없어 보이지만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저 멀리 진공 상태의 우주에서도 누군가의 떠다니는 마음은 있어요. 달을 바라보며 사람들에게 말 못 할 비밀과 고통을 신에게 읊조리듯 기도하던 한 소녀의 마음 같은 거죠. 빈 공간의 마음이란 당신이 더 잘 느낄 수 있겠죠. 들판을 내다보는 저의 귀에는 틀어놓은 음악이 가라앉았습니다. Charles Trenet의 La mer라는 음악입니다. 가을과 참 잘 어울립니다. 쌀쌀한 공기는 순수한 생각과 닮아 보여요. 서울에서 브라자빌로 훌쩍 떠나는 용기와도 닮아 보입니다. 나의 하루를 꽉 채우던 모든 장소와 시간을 내버리고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살면서 내딛는 모든 걸음에는 두려움이 수반되기가 필수겠지만 날아오르는 새를 동경하는 마음은 기어코 높은 땅에서 뛰어내리게 합니다. 저에게 그런 순간이 올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몇 번 왔던 것 같습니다. 멋지게 날아올랐다가 착지했는지는 모릅니다. 우스꽝스럽더라도 제 눈에 맞는 길이면 맞는 거겠죠. 나아가는 사람이나 머무는 사람이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지닌 채로요. 나의 마음은 어딘가 마모되고 반복되는 비바람에 떨어져 나간 조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닦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다 보면 말랑하고 따뜻한 복숭아색이 될 때도 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색이 될 때도 있습니다. 허물어지지 않을 사랑을 위해 매일 반짝이도록 닦은 마음에서는 빛이 납니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뛰어내립니다. 나의 오늘은 눈에 파묻힌 눈밭 같이 잊히진 않을 거예요. 하얀 눈에 찍힌 발자국처럼 선명할 겁니다. 내일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어 아프리카로 훌쩍 떠나기는 쉽지 않아요. 전 그렇게 못 합니다. 그 대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보낼 거예요. 그리고 오늘 제 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볼 겁니다. 당신은 오늘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펜을 언제 다시 들 지 궁금했었어요. 가을에 느끼는 삶에 대한 사랑이라니. 지금의 저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지금까지의 길과 이어지지만 새로운 곳이에요. 그 시작을 당신께 편지에 적어 보낼 수 있어 기쁩니다. 저는 지금 진료실에 앉아 화면에 차트를 띄어둔 채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 안쪽의 입원실에는 장염으로 입원한 시츄 한 마리가 세상 온순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병원의 직원들을 바라보며 누워있습니다. 짖지도 않아요. 말 한마디 없습니다. 참으로 성숙한 강아지입니다. 저는 얼마나 온순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이 모든 건 가을이라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을 닮아 드는 생각들입니다. 저는 남은 오늘을 잘 걸어가 보겠습니다. 마음을 지닌 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