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안녕하세요. 어제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쏘던 시츄가 오늘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발을 계속 핥아서 어쩔 수 없이 크기가 조금 더 큰 넥카라로 바꿔 씌워줬거든요. 기분이 나빴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뒤로 돌아 앉아 벽만 바라봅니다. 단단히 삐졌어요. 어쩔 수 없어요. 끊임없이 싫은 걸 해야 하는 게 인생이죠. 이번 주에는 미용실을 갈 예정입니다. 이미 예약을 한 상태이지요. 예전에 몇 년간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습니다. 사장님 한 분 혼자서 하는 작은 곳이었는데 거기서 머리를 하고 나오면 꼭 연예인 머리 같다고 우리 엄마가 항상 칭찬을 하셨어요. 세련되고 제 요구와 취향을 잘 맞춰주시는 사장님 덕에 그 미용실에 정착을 했었답니다. 미용실 의자에 앉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방 가요. 그래서 그 조그마한 미용실에서 저는 사장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 한복판의 크고 잘 나가는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역시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큰 물에 가야 하나 봅니다. 저 또한 인턴 시절은 아주 큰 동물병원에서 보냈었거든요. 물론 그게 항상 정답은 아닙니다. 제 친한 동기는 아주 작은 병원에서 인턴 시절을 보냈는데 실력을 아주 잘 쌓았어요. 사장님은 저를 보면 제 나이와 비슷한 가족이 생각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사장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이거나 남으로 살다가 하나가 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서글프고 씁쓸한 면이 있습니다. 하나일 줄 알았는데 다시 둘이 되기도 해서 그럴까요. 아무래도 우리가 가족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많은 마음을 가져서 그런가 봐요. 그런 사장님의 개인적인 가족사는 저 혼자 알고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면 사장님은 항상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고 계셨어요. 영어 공부였습니다. 저는 사장님이 어떤 꿈을 꾸고 계시는 걸까 궁금했어요.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직업이 이미 있으면서도 매일 같이 닿기 위해 노력하는 꿈이 뭔지 물어보는 것이 꼭 그 꿈이 우습고 별 거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어요. 괜한 걱정이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어요. 이사를 하고 병원을 옮기고 바쁘고 정신없던 날들을 보내다가 이제는 머리 만질 때가 되었지 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미용실을 다시 찾았을 때는 말끔히 사라진 채였거든요. 사장님도, 미용실도요. 꽤나 허망하고 아쉬웠고 또 슬펐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저에게 맞을 미용실을 이리저리 찾아다녔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이전에 만났던 사장님 같은 분은 없었어요. 당연한 말이죠.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가 꼭 이런 식이더라고요. 누군가 제 옆에 있을 때에는 꼭 맞는 퍼즐 조각을 찾은 것처럼 마음이 이어져있고 피어오르는 따뜻함과 기쁨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새로운 누군가가 제 옆에 다가옵니다.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고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도 있고요. 떠날 때마다 슬퍼하는 건 힘든 일이기에 저는 지금 제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나눠주는 거예요. 사라져 버린 누군가는 어디선가 다른 사람들 옆에서 비슷한 마음을 느끼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영원한 건 없다는 깨달음을 얻은 걸지도 모릅니다. 고행길로 지쳐버린 사람에게 무턱대고 도착지가 있다고 소리치는 건 아무 위안도 되지 않을 거예요. 영원을 소망하고 노래하는 건 그런 일 같기도 합니다. 아무도 새겨듣지 않고 코웃음 치기도 하는 식상하고 진부한 말이기 때문이죠. 영원히 사랑한다는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 하는 고백처럼요. 그렇지만 우리는 영원에 기대어 살고 위로를 얻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어릴 적 키우던 고슴도치가 죽었을 때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십 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초코를 기억합니다.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코와 보드랍고 따뜻한 배의 감촉이 기억나요. 제 손 안에서 잠들던 시간의 풀어진 공기를 저는 언제까지나 기억할 겁니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영원한 거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영원을 믿습니다. 우주의 가장 강렬한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영원한 건 남아있을 겁니다. 당신은 영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