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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한 마리, 재규어

by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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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닭 한 마리를 요리해 먹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면 생각나는, 잘리지 않는 맛. 닭고기를 육수에 퐁당퐁당 넣어서 먹을 뿐인데 깊게 우린 맛이 난다는 게 신기하다. 다녀간 사람들의 낙서가 벽에 빼곡히 적힌 식당에서 처음 닭 한 마리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을 데려가 냄비를 끓이고 앞접시에 덜어서 후후 불어 먹던 날의 기억. 그곳을 찾아왔던 사람들의 시간과 이야기가 다정스레 담긴 곳에서 시작된 추억의 맛은 나를 종종 어리고 즐거운 나날의 환희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그럴까? 이제는 집에서도 쉽게 닭 한 마리를 요리해 먹는다. 혼자 다 먹기 어려운 양은 가족을 함께 추억의 환희로 또다시 이끌곤 한다. 특정한 요리, 특정한 맛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 맛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당신이 될 누군가를 초청하는 나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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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밤의 연인을 본 적이 있다. 특별한 카메라로 촬영해 깜깜한 밤의 자연을 담은 다큐멘터리였는데, 지금껏 보인 적 없던 다정한 재규어 암수 한 쌍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엎드리듯 앉아 느린 속도로 눈을 깜박이며 둘만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를 공유하여 조용하고 어두운 땅에서 서로의 온기에 몸을 누그러뜨리고 눈짓의 언어를 주고받는 재규어 연민의 모습은 마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아, 빠르고 야생 속 전쟁과 같고 냉혹한 세상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가만히 온기를 나누며 다정히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자격 없는 사람에게도 그런 사랑이 주어진다면 세상은 변할 텐데. 우리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단 핑계로 땅에 떨어진 온기를 줍지 않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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