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고슴도치와 고래의 여행, 웃는 가오리, 사랑

by 가을


22


고슴도치는 고래의 등을 타고 올랐다. 물살이 잔잔해서 동행은 어렵지 않았다. 어깨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서는 본인의 지리로 돌어갔다. 고래에게 고슴도치의 존재가 미미하며 거의 없는 듯 보여도 아예 수면 밑으로 가라앉지 않음으로 인해 충분히 고슴도치를 신경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햇빛은 구름 사이로 바다를 투명하게 비추며 길을 안내했다. 에메랄드 빛 바닷물은 피부를 감쌌다가 쓰다듬듯 흘려버렸다. 고슴도치와 고래의 닻은 내려가기까지 한참 남았고 소리 없는 대화도 이어지고 있었다.


23


가오리는 행복할까? 저 웃는 표정은 뭘까? 아쿠아리움에서 어릴 적 봤던 가오리는 이유도 없이 웃는 알 수 없는 존재였는데, 실제로는 진짜 얼굴이 아니며 동시에 포식자라는 걸 시간 지나 알게 됐다. 살면서 가오리와 같은 존재를 많이 만난다. 웃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진실된 얼굴은 따로 있는 이들. 그러나 가오리는 행복할까? 굶주린 배를 포식하여 가득 채워도 다음 날이면 비워지는데. 평생 반복할 포식에 행복할까? 본인의 다른 이면이 보이는 것에 민족 할까? 답은 쉬이 할 수 있는 셈이다.



24


사랑을 포기하지 말자. 불시에 허망과 우울이 스며들어도 그곳을 말려 물들일 수 있는 작은 보석의 색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나를 붙잡고 생각들이 생각을 낳아 떠올리는 것만으로 탈진에 이르던 날도 있었다. 몰아치고 발목을 적셔오는 범람을 막었던 건 뒤로 한 발짝 걷는 발이었다. 한 발짝 뗀 후에는 두발을 뒤로 뗄 수 있었고, 그 얼마 후에는 뒤로 돌아 마침내 뛸 수 있었다. 달리기의 물기 없는 청명한 공기 냄새를 알아차린 후에는 근육이 냄새를 기억하고 습득했다. 나는 사랑도 결국 근육의 습관이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사랑을 익힐 때 깊은 물 웅덩이를 말리는 쨍한 햇빛의 너그러운 냄새를 맡을 수 있기를.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0화닭 한 마리, 재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