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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mel Mar 12. 2020

전시 상황과 지도자의 리더십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의 더 나은 시민이 되기 위한 지침


    요즈음 내 인생에 다시없을 시간적 여유 덕분에 친한 교수님의 추천을 받았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를 열렬히 시청 중에 있다. 원래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인데 (미드는 더욱이 흥미를 잘 못 갖는 편인데) 이건 정말 미쳤다. 재미있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특히 현재 보고 있는 에피소드가 지금 정치적 상황과 겹쳐 보여 흥미롭다. 주인공인 대통령 프랭크 언더우드가 의회에 중동 테러 집단인 ICO를 향해 선전 포고를 하라는 압박을 가하는 전개인데 이는 미국이 전시 상황에 있음을 공식화하려는 의도이다.



       기막힌 우연인 걸까? 때마침 최근 한겨레 신문에 일본의 아베 총리가 '코로나19에 긴급사태를 펼칠까'라는 내용의 기사가 올라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은 코로나19에 대한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시킨지 어느덧 2주가 되어가는데 일본과 대조되는 상황처럼 눈에 비쳤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종식' 발언과 함께 코로나19 방역 실패에 관한 비판이 여전히 들끓는다. 상황이 참 씁쓸하다 해야 할까, 아이러니하다 해야 할까. 생각이 많은 와중에 흥미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지도자는 과연 어떤 요소를 고려해 나라의 '긴급 사태'를 선언할까?
 시민들은 어떤 관점으로 지도자의 결정을 판단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언급된 세 리더는 모두 다른 성향을 가지고 각자 다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일단, 세 리더는 ‘긴급한 상황’에 처한 국가의 수장이다,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을 신속하게 막아야 하고, <하우스 오브 카드>의 미국은 국내에 잠입한 테러 집단을 막아야 한다. 이 세 리더가 각자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 국민들의 지지와 평가, 그리고 재임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떠한 일이든지 결과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과 원인은 거의 전적으로 리더의 몫이 된다. 일의 설계에서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리더의 판단력과 의지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성과를 얻기 위한 요소는 과업에서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는 구성원 전체의 협력 총합이지만, 특히 잘못된 일 또는 실패한 일의 결과에 대한 구성원의 지분은 미약하다. 이게 우리 사회 집단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구조와 문화랄까. 따라서, 각자의 긴급한 사태를 마주한 세 리더가 필사적이 되는 동기는 반드시 이타주의 같은 막연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의 해결이 본인의 명예와 권력의 존속이라는 사익과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이 보도한 아베 총리의 긴급 사태 선언에 관한 고민이 여기에 가장 잘 들어맞을 것이다. 일본의 코로나19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기록은 확진이 약 1천 명에 사망자가 16명이지만, 감염병 확산에 대한 일본의 심각성은 이미 전 세계가 알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베 총리는 확산 초기 항공기 유입을 제한해 통제하는 듯 보였지만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선착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감염자와 사망자를 숨기고 있다는 둥 감염률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둥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상반되는 의견들이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아베 총리였기 때문인지 여론의 반응이 더욱더 뜨겁다. 이에 관해 언론들은 아베 총리의 초기 대응 이후 본인의 정치적 메시지에만 집중한 나머지 코로나19 확산의 틈새를 허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베 총리는 왜 그랬을까? 경제든, 전쟁이든, 방역이든 대중들의 심리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곧 종식'에 관한 구글의 검색 결과



    문재인 대통령도 유사한 이유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재 온라인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그리고 두고두고 회자될, '곧 종식' 발언도 대중의 심리를 조절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상황이 급변하며 실패한 케이스로 분류된다. 코로나 사태가 거의 정리되어갈 무렵에 상황이 급변한 것이 꼭 문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지만, 바이러스의 불확실성을 고려해서라도 섣불렀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강세다. 여기에 더해, 감염병 확산 초기에 중국 봉쇄 불이행도 한 몫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에 알맞게 위기 경보를 격상시켜 대응하고 있는 부분은 아베 총리의 대처와 차이를 보인다.


    반면, <하우스 오브 카드>의 언더우드는 이들과는 다르게 매우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중동 테러 단체인 ICO는 온라인을 통해 미국의 청년들을 세뇌해 일반 시민 세 명을 납치하게 만들어 정부와 거래를 시도한다. 언더우드는 협상 과정에서 인질 둘은 구출해내지만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대응으로 인질 한 명은 끝내 구하지 못한다. 인질의 처형 과정이 전국에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시민들은 그 상황을 낱낱이 목격한다 (상황실의 모두가 처형 장면을 쳐다보지 못하는 와중에 이를 무표정으로 똑바로 지켜보는 언더우드와 그의 아내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를 두고 언더우드는 대중의 공포 심리를 자극해 ICO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본국은 현재 테러의 위협에 처해있는 상황이라고. 실제로는 테러범을 생포해 직접적인 원인은 제거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숨긴 채 재임을 위한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도록 이용한다. 또 선거 당일 실득표율이 예상 득표율에 못 미치자 선거의 판을 바꾸기 위해 대중의 공포 심리를 다시 한번 이용한다.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미국 의회에게 선전포고를 하라고 압박하는 프랭크 언더우드. 출처: Netflix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일본의 지도자는 코로나19의 전파 초기에 항공 통제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감염병의 확산을 막지 못한 가운데, 한국의 지도자는 외부로부터 감염병의 유입을 통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몰매를 맞고 있고, 언더우드는 테러범을 자극해 고의로 희생을 낳으며 사태를 키웠다. 이후 사실상 테러 사태를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긴장을 유지시켰다. 이 같은 전시 상황에서 지도자의 일차적인 목표는 문제의 해결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상황과 요소를 고려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지도자의 역할이자 책무이고, 이 과정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은 민주사회 시민의 역할이고 책무이다.


    이는 단순히 중국 입국 제한 불이행의 사유가 문 대통령이 북한의 앞잡이이기 때문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통해 새로운 삼국 협력을 이루려는 것이라는 둥의 증거 없는 돌림노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국내로의 유입은 실제 상황이고, 정부는 항공과 선박 방역에 대한 조처를 하는지, 취한다면 어떻게 취하는지, 그리고 중국 입국 제한은 어떤 이익과 손실을 낳을 수 있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사고하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언더우드와 문재인, 그리고 아베가 처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그들의 지지율의 배경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대중의 무지'이다. "개인은 똑똑하나 대중은 무지몽매하다"는 말이 있다. 집단 심리학은 흔히 인간은 주위 환경에 휩쓸린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종종 객관적인 '상황'이 아닌 '사람'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의 의견을 주입받아 되풀이하는 이러한 현상의 종착점은 나치 사태와 같은 포퓰리즘에 이르기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집단으로부터 나 자신을 분리시켜 '나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필요가 있다.


휩쓸리지 말고 생각하라.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에 따른 절대적인 책임이다.











참고: 

    1) 페이스북 Jong Hyun Kim

    2) 국민일보 기사. "코로나 19 사망자 숨긴 일본... 전문가 집단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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