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름 Nov 10. 2023

아름, 다운, 보나

스누트 9-10월 · 3회 │ 나의 베스트 프렌드를 소개합니다.

  “에? 벌써 다 마셨어?”

  

  빈 와인잔을 보고 다운이 말했다. 블루투스 마이크를 쥔 손이 툭 떨어져 ‘웅-‘울렸다.


  “더 사러 가자! 그래, 우리 셋이서 와인 두 병은 애당초 나약한 선택이었다니까! 가자! 가자!”


  그녀는 방금까지 부른 ‘포이즌’과 ‘노바디’ BPM으로 재촉했다. 보나는 식탁 의자에 쪼그려 앉아 찌그러진 버드와이저 세 캔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것도 마셨어~ 정다운 또 제일 먼저 취했다.”


  아름이 빈 와인병을 형광등에 비춰보며 물었다.


  “근데 여기 걸어갈 수 있는 슈퍼가 있나?”


  지도 앱에 ‘편의점’을 검색하던 보나가 창밖을 봤다. 묽게 간 먹물이 스민 화폭 같은 프레임. 뭉근한 노란 빛도 배여 있었다.


  “일단 나갈까? 술을 사든 바람을 쐬든.”


  보나 말에 아름은 춤추다 산발이 된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오렌지색 사롱을 어깨에 둘렀다. 보나도 흰색 카디건을 걸치고 하늘색 리넨 셔츠를 다운이에게 건넸다.



  펜션 문을 열자 사근진 바다 공기가 테킬라 소금처럼 달큰히 취기를 돋웠다. 파도 소리를 향해 다운이 해변을 달렸다. 보나는 발 끝에 튀는 모래를 보며 큰 보폭으로, 아름은 그런 보나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아름은 누가 멀리서 우릴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면 흰색, 주황색 선이 바느질 땀처럼 나란히 뻗어 있고 하늘색 점이 폭죽 흔적처럼 모래사장에 뿌려져 있겠다 생각했다.

  파도 거품에 앞에 멈춰 보나가 말했다.


  “올봄에 남편이랑 여기 지나다가 바다 바로 앞에 펜션 짓길래 이름 확인 해놨잖아. 니네랑 여름에 오려고.”


  아름은 다운의 뒷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크~ 역시 최보나!”


  붉은 초승달이 수평선에 맞닿아 있었다. 태양, 지구, 달이 일직선에 놓인 밤. 달은 지구가 가린 태양빛 대신 가장 긴 붉은 파장으로 여섯 눈동자에 맺혔다. 아름, 다운, 보나는 나란히 레드문 앞에 섰다. 아름이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나 정시시박야! 니네 지금 너~무 이뻐! 사진 찍어줄래!”


  사진작가 하시시박의 <Full Moon Aurora>전에 반해 그녀에게 한 달간 수업까지 들은 다운이 휴대폰 렌즈를 옷에 닦으며 모래사장에 털썩 앉았다. 아름이 사롱을 벗어 깔아주자 그대로 누워 혼자만의 작품 세계에 빠졌다.



  이번 8월도 함께 바다에 왔다. 셋이 하는 물놀이가 재밌기도 했지만 한 여름이 생일인 아름을 챙기는 연례행사기도 했다. 아름은 달을 보며 말했다.


  “새삼 고맙네. 암만 내 생일이라도 당연하게 시간 내는 니네나, 보내는 니네 남편들이나. 게다가 니는 지금 일주일 내내 생파마다 왔지 않냐?”


  보나는 너울에 머문 시선으로 말했다.


  “뭐래~ 니 생일 덕에 간만에 애들 보고 좋지.”


  보나와 아름은 초, 중, 고, 대학을 같이 다녔다. 회사는 다른 곳에 다녔지만 거기서 친한 사람들 얼굴과 이름도 서로 훤히 안다. 그런 보나가 작년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신랑이 자기가 소개해준 친구인데도) 아름이는 대학 단짝 다운이의 결혼 때처럼 마냥 축복이진 못했다. 아름은 유치한 상실감이 부끄러웠다. 감정의 크기와 상관없이 미안했다. 낙성대, 사당, 서초 2호선에 조르륵 자취하며 매주 만나던 셋은 이제 상도, 안양, 송도에 뿔뿔이 흩어졌다. 완전체론 두세 달에 겨우 한번 볼 수 있었다.


  “뭐라 캐도 너거가 내 첫 번짼기라!”


  아름이 과장된 고향 사투리를 내뱉자 보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니가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어. 괜히 멀어졌다 생각할까 봐. 사실 나도 옛날에 그렇게 느낀 적 있으니까.”


  이 십년 넘게 아름의 투정과 걱정을 들어주던 보나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자 아름은 조금 놀랬다. 아니, 자기가 그녀의 감정을 몰랐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나는 고등학교 가면 당연히 니랑 젤 친할 거라 생각했거든? 지금 보면 당연한 건데, 니가 새 친구들 사귀고 더 가깝게 지냈을 때 속상하고 질투도 났어. 그리고 너 먼저 취직하고 서울 갔을 때도 나랑 다운이 같이 살면서 니가 되게 멀리 떠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근데, 맞제? 그냥 좀 멀어졌다 좁아졌다 할 때가 있는 거 같아. 그래도 서로 알잖아. 우리 셋은 그냥 친구는 아니지."

"그래, 자매지, 뭐.”


  그 사이 달이 꽤 높아졌다. 어느새 뒤에서 두 친구를 찍고 있던 다운이 웃으며 달려왔다.


  “야야! 이거 봐! 달이 우리 발 끝까지 와있어!”


  그녀가 내민 휴대폰엔 아름, 보나의 머리 위 작게 걸린 초승달과 처음보다 더 크고 붉어진 수면 위 달이 해안선까지 나와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섬머 로스 증후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