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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Oct 29. 2023

엄마의 전화

스누트 9-10월 · 4회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한 일에 대하여

  양치를 하고 있었다. 화한 거품 새로 뻑뻑한 칫솔모가 어금니를 스치자 며칠 전 꿈이 생각났다. 주먹만 한 어금니가 쑥 빠진 꿈. 네이버에선 누가 죽는 의미라던데. 똥 꿈을 꿔도 로또 오천 원 안 되는 부실한 예지력이라 그냥 덮어뒀었다. 근데. 왜 지금. 그 개꿈이 떠오르고 난리냐?




  엄마와 내 전화엔 암묵적 룰이 있다. 나는 퇴근길 차 시동을 켜자마자 전화를 건다. 저녁 7시 언저리, 전화가 안 오면 엄마는 오늘 딸 야근하나 보다 한다. 엄마는 전화를 놓친 적이 거의 없다. 간혹 벨 소리를 못 들어도 딸이 집에 도착하기 전엔 다시 건다. 그것 말고는 먼저 하는 법은 통 없다.


  사실 지난 금요일 이후 통화목록엔 며칠 ‘엄마미♥’가 없었다. 마지막 통화의 시작은 평소 같았다. 나는 “별일 없나?”했고 엄마는 “별일 없지”했다. 내가 그날 웃겼던 일을 와다다 말하자 엄마는 한참 웃다 툭 말했다. 


“안 그래도 니네 아빠 저번 너거 집 갔을 때처럼 며칠 앓다가 이제 좀 괜찮아졌다.” 

  나는 방금까지 낄낄댄 게 무색하게 못 돼 먹게 쏘아 댔다. 

  “쫌! 큰 병원 가서 검사받아 보라고! 저번에도 말했잖아!” 


  아, 진짜! 벌써 세 번 째였다. 두 달 전 가족여행 마지막 날, 아빠는 이불이 푹 젖도록 땀을 흘렸고 밤새 토했다. 소화제 먹고 하루 쉬면 된다 했지만 대구 집 가서도 이틀을 더 그랬다. 그리고 몇 주 뒤 이삼일, 또 몇 주 뒤 사나흘. 증세는 비슷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뒤늦게 알려줬다. 


  “가라 케도 안 가는데 뭐. 됐다. 너거 아빠 내 그래 고생시켜 놓고 죽을 때도 고생시키겠나? 이제 개안타. 신경 쓰지 마라.” 


  나는 대책 없이 괜찮은(척 하는) 엄마가 못마땅했다. 아니, 실은 바로 옆에 못 있는 답답함을 구실로 회피해 온 내게 짜증이 났다. 나는 다음날 야근을, 그리고 회식을, 또 친구 약속을 핑계로 전화를 안 했다. 엄마도 전화가 없었다.



  그러다 오늘 오후, 진동음과 함께 ‘엄마미♥’가 액정에 떴다. 룰이 파괴된 전화에 내가 옹알이 같은 "여보세요"를 하자 엄마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지금 응급실 가고 있다. 내일 바로 수술해야 된다 카는데 엄마 무섭다. 내일 좀 올 수 있나?” 


  사무실로 돌아오니 후배가 저녁을 가쟀다. 식수 카드를 찍고 식판에 밥을 담고 앉아 내일 본가에 일이 있어 연차를 쓴다고 말했다. 국을 한 술 떴는데 목이 턱 막혔다.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해 곧 출발한다 하고 이틀 치 짐을 쌌다. 이걸로 되나 싶다가 이걸로 돼야지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은 아직 코로나 모드. 보호자는 한 명만 돼 곧 일흔인 엄마가 밤을 새웠다. 난 아침에야 응급실로 들어섰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설까? 붕 뜬 공항 냄새가 났다. 아빠는 링거 두 줄을 꽂고는 노래진 얼굴로 트로트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많이 놀랬제? 아니, 나는 그냥 체한 줄 알았지.” 


  마침 어린 의사가 와 시술 동의서를 내밀었다. 어제 들은 폐혈증이니 종양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수술도 봐야겠지만 뭐 쓸개 떼는 정도일 거라고 했다. 안도감으로 활강한 두려움이 잔소리로 튀어나왔다. 


  “아빠 아직 청춘이가! 밤 늦게 자꾸 뭐 먹고 하니까 그렇지!” 

  

  내가 침대 끄트머리에 털썩 주저 앉자 아빠는 다리를 접어 자리를 내줬다. 


  “미안하다. 걱정 안 시킬께. 운전해가 오느라 피곤하제?”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는데 엄마아빠는 너무 빨리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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