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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Nov 12. 2023

올해 가기 전에 한 번 모여야지!

스누트 11-12월 · 1차 │내가 차린 식탁에 초대하고 싶은 단 한사람


  해 가기 전에 한 번 모여야지!


  단톡방마다 송년회 하자는 메시지가 하나 둘 올라온다. 올해도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작년 이맘때, 멤버와 날짜는 달라도 장소는 늘 어린이대공원 옆 우리 집이었다. 배달시킨 방어회와 석화를 장독대 뚜껑만 한 그릇에 옮겨 담고, 전날 <마켓컬리>로 주문한 쪽갈비를 에어프라이어에 굽는다. 미리 캐러멜라이징해 둔 양파로 어니언 수프를 끓이고, 샐러드 겸 식사로 펜네 파스타를 삶는다. 거기에 성글게 썬 브리 치즈, 방울토마토, 바질에 다진 마늘과 올리브오일을 버무리면 완성! 냉장실 구석 수제 피클은 몇 년 전 베를린 플리마켓에서 사 온 목 짧은 크리스털 잔에 담는다. 아끼는 도예가 그릇과 원데이 클래스에서 내가 만든 접시도 이런 날 꺼낸다. 친구들이 가져온 와인은 가벼운 순으로 줄을 세우고 제일 앞에 있는 놈부터 스테인리스 쿨러에 담는다. TV로는 유튜브 모닥불 영상을, 블루투스 스피커로는 캐럴을 튼다. (머라이어 캐리 언니의 연금이 또 쌓이는 구나!) 동그란 6인용 식탁을 다 같이 거실로 옮기고 노란 간접등만 켠다.


  “나 케이크 사 왔어!”

  “난 누가 케이크 사 올 거 같아서 일단 이거 가져와봤어!”


  친구 하나가 <세실셀라> 당근 케이크를 꺼내면 다른 친구는 하트 모양 토퍼와 그 해 숫자 모양 초를 꽂는다. 빈 와인 병이 둘 셋 넷 쌓이면, TV 속 장작도 어느새 희끄무레해진다. 한 해 동안 같이 즐거웠던 일, 지금 각자의 고민, 내년의 응원을 한참 떠든다. 밖은 검푸른 영하의 겨울밤. 하지만 우리의 공기는 호랑가시나무 열매처럼 단단하고 붉다. 보일러를 낮췄다, 껐다, 잠깐 창문을 연다. 진공된 시간과 떠들썩한 소리가 현실에 육박해간다. 그리고 누가 <진짬뽕> 찾으면 파티는 끝!



  하지만 올 연말, 나의 식탁은 조용할 것 같다. 작년 12월 송도로 발령 났다. 편도 60킬로미터 운전에 5,700원 톨게이트비 출퇴근길은 한 달을 못 버텼다. 어린이대공원 후문 10년 차 빌라보다 방도 화장실도 하나씩 더 있는, 송도 달빛축제공원 건너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엄마는 집을 보고 허구한 날 친구들 불러 노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엄마, 이 정도 거리는 웬만한 사랑으론 올 수 없거든? 집들이로 친구들이 왔을 때도 먼 길이 미안해 오히려 불편했다. 그냥 나의 서울행이 속 편해 주말엔 하루 두세 개 일정을 꽉 채워 잡았다. 


  하지만 평일 저녁은 정적, 고요, 심심. 야근이 당연했던 삼성동 본사에서 칼퇴가 가뿐한 곳으로 오니 심지어 공허했다. 티슈를 바닥에 떨어뜨리면 지는 게임에서 골 띵하게 입바람 불어대다 갑자기 종료 휘슬이 울린 기분. 나는 티슈처럼 착 가라앉았다. 서울에서 나와 다르지 않을거란 믿음이 절실했다. 그래서 이사 할 집을 찾기도 전에 요가원부터 알아봤다. 주 2~3일 나가던 서울 요가원장님께도 검색한 링크 몇 개를 보내드렸다.


  "보내 주신 곳들 좀 봤는데, 아름님한테는 오히려 안 좋을 것 같아요. 아름님은 수련할 때 만이라도 힘 빼는 연습이 더 필요해요."


  원장님은 자기도 8년 전 인도 워크샵에서 본 이후 블로그로만 소통한다는 송도의 한 하타요가*원장님을 소개해줬다. 새벽 6시, 90분 수업. 한 자세마다 1~2분씩 유지하고 있으면 뒷짐 진 채 말로만 적확한 핸즈온*을 하던 그 곳의 내공이 남달라 보이긴 했다. 하지만 한 달하고 그만뒀다. 힘을 빼다 못해 나를 땅 속까지 꺼드렸다. 서울에선 그게 맞았는데, 송도에선 아니었다. 


  다시 네이버에, 인스타그램에 '송도 요가'를 검색했다. 그렇게 구르고 찢고 매달리고 거꾸로 세우는 지금 요가원을 다닌 지 7개월. 야근도 약속도 없는 덕에 월화수목금(토)를 가다 보니 2개월 만에 어깨가 펴졌고, 3개월 만에 물구나무를 섰다.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걸 몸으로 깨닫는다. 두툼한 메리노울 담요 같던 요가가 침전된 나를 휘저어 깨울 수 있다는 것을. 시끌벅적한 홈 파티가 없는 연말도 풍성한 마음일 수 있다는 것도.






*하타 요가 :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목표 명상에 가까운 요가법. 한 동작을 오랜 시간 깊게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련한다.

*핸즈온(Hands on) : 요가 수련 시 강사가 회원의 몸에 직접 손을 대고 티칭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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