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름 Aug 21. 2023

분열과 폭발

스누트 7-8월 · 4회 │ 살면서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나만의 가치

* 이 글에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를 봤다. 


  유튜브 클립에 최적화된 집중력. 통신사 무료 예매로만 가는 극장. 즐겨 입던 티셔츠의 민트 색 타이포 그래픽 Christopher가 Nolan인 것을 친구 덕에야 아는 영화적 소양. (함께 프린트 된 Wes, Stanley, Francis는 아마도 Wes Anderson, Stanley Kubrick, Francis Ford Coppola겠지?) 그런 내가 개봉 다음날 아이맥스관을 찾다니! 역시 유튜브 알고리즘 노예가 맞긴 맞나 보다. 피드를 덮은 ‘영화 보기 전 꼭 알아야 할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이 놀라운 열 가지 이유’류의 영상은 이 영화관람을 이번 여름휴가 투두리스트 중 하나로 만들었다.


  예습 효과는 있었다. 1920년대 물리학계 인사와 시류, 오펜하이머 집안과 애정사에 관한 배경 지식은 놀란 특유의 플롯에 쉽게 올라타게 했다. 인류 최초 핵폭발, ‘트리니티 테스트’신에 노출되자 <오펜하이머> 영화의, ‘오펜하이머’ 인생의 절정을 삼킨 듯 목구멍이 뜨겁고 묵직했다. 애매한 울음이 비강에 걸렸다. 나는 UV 선크림을 치덕 바르고 1945년 7월 16일 새벽, 뉴멕시코 모랫바닥에 ‘맨해튼 프로젝트’ 과학자들과 엎드려 있었다. 섬광과 폭음은 공포의 순간이 아닌 예고였다.


  오펜하이머, 그 자신의 분열과 폭발도 그때였다. 재수 없지만 근거 있는 오만함. 과학기술에 대한 무결한 신앙. 섭리로 받아들인 핵 폭탄. 나치보다 앞서야 한단 사명감. 조국의 윤리는 적국보다 우월하단 자만심. 

  하지만 히틀러의 자살로 투하 방향은 히로시마 민간인 17만 명 희생으로 틀어졌고 그의 신념도 길을 잃었다. 믿음의 관성은 격렬한 모순으로 튕겨 나갔다. 원자폭탄의 아버지가 수소폭탄은 반대했다. 전쟁 영웅이 군축을 주장했다. 과학자가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다. 그의 가치관은 핀볼 게임 공처럼 부딪히며 강해졌다. 하지만 매카시즘 시대, 그의 친 공산주의 과거는 갈피없는 조국애로 편집됐다. 결국 그의 보직과 명예, 믿음까지 추락.


  그는 처음부터 알았을 것이다. 동료 과학자에게 핵폭탄 개발은 그저 ‘칼을 만드는 것’이라던 그가 히로시마 폭격 후 트루먼 대통령에게 ‘내 손에 피가 묻은 것 같다’고 한 것은 신념이 변해서가 아니라 직시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업적을 누굴 해 할 의도 없는 칼의 무구함이라 믿고 싶었겠지만 현실은 그 스스로가 ‘피 묻은 칼’이라는 것을. (실제 그의 표현은 “이제 나는 세상의 파괴자, 죽음의 신이 되었다”였다.)


  나는 비타협적인 가치관이 때론 붕괴된 신념보다 두렵다. 파국처럼 느껴질지라도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믿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위선이 위악보다 나은 것 처럼. 인간보다 크고 복잡하고 강한 종족은 없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나 홀로 가구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