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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름 Sep 23. 2023

사랑하는/사랑한다

스누트 9-10월 · 1회 │ 가장 최근에 사랑한다고 말했던 순간

  "사랑하는 00의 생일 축하합니다~."


  매번 박수까지 치며 불러서일까? 태어나 처음 외운 노래 덕에 나는 ‘사랑하는’ 것을 쉽게 말할 수 있다. 올리브오일을 두른 부라타 치즈와 무른 복숭아를 한 입에 먹는 맛. 업무 쿵짝 잘 맞는 동료. 요가까지 하고 온 금요일 늦은 밤의 샤워. 불 꺼진 집, 맥주 한 캔 꺼내려 냉장고를 열었을 때의 거실 조도. 오늘 입술에 바른 이브 생로랑 ‘플레이 잇 코랄’. 별일 없이 연차 쓴 아침의 동네 산책. 8월 한낮 야외수영장, 태양을 피해 실눈으로 떠다니는 배영. 그늘진 선베드에 누워 읽는 책과 문장들. ‘기분 좋은 감각’은 ‘사랑하는 것’으로 쉬이 치환된다. 톡톡, 터치 두 번으로 핑크 하트가 액정을 날아가는 인스타그램 훈련 덕에 ‘사랑하는’이란 수식어는 어쩜 가볍기도 하다. 며칠째 식탁에 둔 손바닥 크기 메모장에 끄적인 활자같이. 앞장엔 도라에몽 낙서와 어제 다 못한 일 두어 개도 쓰여 있겠지.


  하지만 서술하는 사랑은 어렵다. 아침 지옥철의 회사원처럼 서가에 낀 책에서나 찾아 써야 할까. 책장에 나무 사다리를 기대 올라 해진 하드커버 하나를 고른다. 꽃천에 검지 중지를 걸어 당기다 휘청, 책머리 소복한 먼지에 콜록댄다. 이쯤에서 본 것 같은데. 책갈피를 들어 올려 쩍 펼친다. 그었던 밑줄들, 펼쳤던 페이지를 한참 뒤적이다 발견하는 문장. ‘사랑한다’는 고백.


  ‘수식하는 사랑’의 청자는 이 사랑과 무관한 제3자다. 아무래도 좋아. 나는 얼마든 이 감정을 유희한다. 하지만 ‘서술하는 사랑’은 청자도, 목격자도, 대상도 모두 하나, ‘사랑’ 그 자체. 그래서 나는 어렵다. 고백하기 전에 수 백 번 나를 검열한다. 은닉했던 마음을 내뱉는 순간, 나는 텅 빌 테니. 나에 대한 권능은 이제 그의 것일 테니. 이제, 유약한 기다림을 접는다. 입가에 맴도는 사랑에 온점을 맺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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