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나름 Aug 21. 2023

나 홀로 가구 아닙니다.

스누트 7-8월 · 3회 │ 동물을 기르거나 기르지 않는 삶에 대해

  저녁 7시, 내일의 나를 믿(어 보기로 하)고 일단 컴퓨터를 끈다. 요가원까지 차로 10분, 수업은 8시지만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맞은 편 유리문 너머로 코를 박고 얼굴을 들이 민 비숑 둘, 비숑·파피용 믹스 셋 (밤색 둘, 까망 하나). 눈이 마주치자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더 격렬해진다. 살짝 문을 당기자 팝콘처럼 뛰어올라 탈의실까지 따라온다. 옷 갈아입는 내내 나를 빤히 보지만 암놈 넷에 중성화 한 놈이니 냅둔다.


 “가자!”

  라운지로 호다닥 따라 나온 녀석들은 책을 펴고 엎드린 내게 기대 배를 뒤집는다. 베리 (비숑)는 꼭 가슴팍과 책 사이로 파고든다. 삼점이 (까만 믹스)는 책장을 넘기려 보듬던 손을 뗄 때마다 앞발로 툭툭 친다. 그 덕에 책은 몇 주째 1챕터지만 나는 온전히 충전된다. 연이은 미팅, 전화 수십 통. 온갖 수식이 얽힌 엑셀로 퇴근 무렵이면 신경 각질이 허옇게 일어나지만 애들을 안는 순간 곤두선 감각이 주저 앉는다. 뒤틀린 속도와 경계에 오른 체열이 제자리를 찾는 법열의 경지. 낯가림 없는 강아지가 원장님 영업 비결이든 아니든. 녀석들이 내게 안겨있다가도 고인물 회원이 오면 뒤도 안보고 윤성빈 서전트 점프로 달려가 버리든 말든. 어쨋든 걔들을 보러 일주일에 네 번은 요가원에 가니 2년 간 엄두도 못 낸 머리서기를 2개월 만에 성공했다!


  하지만 강아지를 키울 생각은 없다. 아니, 자신이 없다. 이 빠진 외로움을 메꾸려 한 존재의 하루를 케어하고 일생을 책임지기엔 나는 아직 생되다. 받을 만큼 못 줄 게 뻔한데, 난 이기적 동거는 못한다.

  하지만 동행의 위로는 필요해 식물을 키운다. 내 키보다 훌쩍 자란 ‘히메몬스테라’, ‘무늬싱고니움’. 동거 6년 차 ‘박쥐란’, ‘스파티필름’, ‘홍콩야자’. 압도적 번식력의 ‘페페’와 ‘아디안텀고사리’. 3년 만에 열매 맺은 ‘레몬나무’와 여전히 감감무소식인 ‘무화과나무’. 그리고 앙증맞은 ‘쥐똥나무’, ‘소나무’ 분재와 함께 산다.


  산책도, 배변 훈련도, 수제 사료도 필요 없다. 그저 물, 햇빛, 바람이면 된다. 반려동물이 주인 관상을 닮는다던데 식물도 그런가? 가끔 그들의 생육상태가 내 근황을 대변한다. 새벽 퇴근과 주말 기절 무한 루프의 작년, 똑같이 물을 줘도 애들이 영 시들했다. ‘칼라데아’는 잎을 다 떨궜다.

  머리도 못 말린 채 나갔다 새벽에야 돌아오니 환기는커녕 거실 커튼이 닫힌 지도 모른 채 몇주를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 몇 걸음 화분 옮길 기운도 없어 샤워기 대신 컵으로 물을 줬다. 알아서 잘 크던 애들이 ‘주인아, 넌 괜찮니?’ 온몸으로 보낸 경고란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 난 칼라데아처럼 원초적 에너지 결핍 상태였고, 결국 한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올 초 새 조직으로 발령 후 아침마다 커피 물을 올리고 아이들을 살핀다. 더위로 쳐진 잎에 분무하고 손가락 한 마디 흙에 찔러 본 후 물을 준다. AI시계가 알려준 미세먼지 농도에 안심하고 창문을 연다. 커피를 내리다 무성해진 녀석들을 보자 문득 다음 이사가 걱정된다. 전국구 발령으로 이사가 잦은 내게 식물이 맞나 싶다. 오히려 짐 아닌가? 줄기 끝을 터트리며 빼꼼 내민 무늬싱고니움 새순에 잠깐. 눈길이 머문다. 도로록 말린 잎을 살짝 펴보니 잎자루를 축으로 왼쪽은 흰 얼룩, 오른쪽은 샛연두색이 완벽히 나눠졌다. 습도, 온도, 햇살. 모든 게 딱 인가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이 슈퍼우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