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곳이 있다. 거기가 어떤 곳이야? 라고 묻는데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더듬거리게 되는 그런 곳 말이다. 내겐 남미 여행 중 그런 곳이 바로 라파즈다. 라파즈에 가기도 전부터 라파즈에 대해 너무 험한 말을 많이 들었다. 총을 소지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위협하고 돈을 뺐는다거나 소매치기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핸드폰을 훔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새 라파즈는 내게 그냥 건너뛰고 싶은 곳이 되어 있었다.
코파카바나에서 우유니로 가기 위해서는 라파즈로 가야 하는데 당일로 연결하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코파카바나에서부터 라파즈로 같이 버스를 타고 온 일행들과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잡기로 했다. 늦은 저녁 도착한 버스터미널은 으스스한 데다 시커먼 남자들이 좀비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택시 창문 절대 열지 마. 만약 열었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 탄 놈한테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해도 내 책임 아니니까.
길에서 만났으면 무서워서 피해 갈 것 같은 인상의 택시 기사님이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툭 말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라파즈가 떠날 때 미련이 남는 애틋한 곳이 되었다면 그 매력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라파즈의 매력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시의 풍경이라는 점이지 않을까 싶다. 여행을 다니면서 아름답고 장엄한 자연경관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인간이 만들어 낸 삶의 풍경에 감동을 하기는 오랜만이었다.
라파즈는 해발 3000에서 4000미터 이상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다. 세계에서 공기가 가장 희박한 협곡 도시이기도 하다. 고도를 낮추며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오는 버스에서 본 라파즈의 밤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구를 밝힌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니 직접 겪지 않으면 믿지 못할 일이었다. 라파즈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해발이 높은 곳에, 부유할 수도록 낮은 곳에 산다고 한다.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이 빈부 격차가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하니 그 또한 아이러니했다.
딱딱하고 무표정한 표정의 사람들, 희박한 공기와 건조한 풍경이 삭막하게 느껴지는 라파즈에서 잔뜩 겁을 먹을 채로 반나절 정도 돌아다녀보니 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배짱이 생긴 것이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지도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동행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 혼자라면 엄무도 못 낼 일이었다. 라파즈의 명물 마녀 시장과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라파즈 윗동네를 보러 가기로 했다. 페루와 비슷한 듯한 모습의 마녀 시장은 이름처럼 기괴한 물건들을 파는 곳이다. 동네 자체가 왠지 음습한 것이 마녀스러웠다.
라파즈의 마녀시장
밤이 오자 라파즈에서 꼭 가야 한다는 낄리낄리 전망대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도착한 낄리낄리 전망대에서 보는 라파즈의 야경은 너무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툭하고 튀어나올 만큼 사람의 인적이 없었다. 그냥 지나치듯 스쳐간 라파즈. 지금 생각해보니 며칠 더 머무르면서 이곳저곳 투어도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만큼 미련을 남긴 라파즈. 내겐 남미 여행의 특별한 도시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