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산 페드로 아타카마

by 박희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기색이 있긴 했다. 아타카마 호스텔에 한국인이 많았는데 K도 그 한국인 중 한 명이었다. 혼자 여행 중이라고 해서 더 눈길이 갔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K는 작은 키에 비쩍 마른 여자애였다. 짧게 자른 커트머리에 아랫입술 쪽에 한 피어싱이 강한 첫인상을 주었다. 말이 거의 없던 K는 숙소에 있던 한국인들과 도통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거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숙소 식당에서 간단한 끼니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K가 들어왔다. K의 손에는 빨간색 태양초 고추장 통이 들려 있었다. 말없이 눈인사를 하더니 K는 뚝딱뚝딱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테이블 위에 근사한 냄새가 나는 냄비가 하나 놓였다. 고추장찌개였다. 한국음식을 꽤 오래 먹어보지 못한 터라 고추장 냄새가 코뿐만 아니라 뇌까지 자극시켰다. K가 내게 고추장찌개를 권할 때 솔직히 조금 놀랐다.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았던 느낌이라 음식을 권한 K가 낯설었다. 별다른 재료도 없는 고추장찌개는 너무 맛있었다. 밥에 쓱쓱 비벼 먹으니 돈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나눠 먹은 이후로 K와 조금 가까워졌다. 우리는 함께 달의 계곡 투어를 가기로 했다. 여행사에 투어 예약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사막의 땅 위에 만들어진 아타카마의 저녁에 조금씩 활기가 띠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낮동안 어딘가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로 나와 각자의 방식으로 사막의 밤을 배회했다. 한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K가 해준 고추장찌개에 대한 고마움을 핑계 삼아 음악소리가 나는 조그마한 펍에 들어갔다. 아타카마의 물가는 헉 소리가 나왔지만 한잔 하지 않을 수 없는 밤이었다. 건배가 몇 번 지나가자 알딸딸한 기분이 들었다.


" 아타카마에 오면 뭘 하고 싶었어? "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 사막의 밤 속을 걷는 여행자들, 마음이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졌다.


" 해가 지는 달의 계곡에서 헤어진 애인 이름 한번 부르고 깨끗이 잊어버리려고요. "


마음의 빗장이 풀리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알코올은 그 순간을 위한 최고의 선택.


연애 이야기라니.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애 이야기는 꿀처럼 달콤하지.


"설마 남친과 헤어져서 남미로 온 거? "


K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K의 연애 이야기는 더 이상 계속되지 않았다.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왠지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사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직업이나 미래의 계획 같은 것들. 나는 K의 직업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어쩐지 K와 어울리지 않았다.


다음 날 우리는 달의 계곡 투어를 떠났다. 인종 나이 국적 불문의 사람들로 투어팀 버스 한 대가 채워졌다. 달의 계곡은 소문만큼 이상하고 신비한 풍경으로 우리를 압도했다. 그중 가장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투어의 마지막 여정인 일몰 타임이었다. 일몰이 잘 보이는 장소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달의 계곡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조금씩 불고 쌀쌀해졌다. 가지고 온 바람막이 점퍼를 꺼내 입는데 K는 여전히 반팔 차림이었다. 분명히 겉옷을 가져왔을 텐데 K는 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었다. 두 팔을 쳐들고 마치 타이타닉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한 것 같은 포즈를 취했다. K가 정말 소리를 지르면 어쩌나 괜스레 걱정이 들었다. 바람과 함께 불어오는 노을이 K의 팔 사이로 빠져나와 땅에 떨어졌다.


" 바람에 세상 근심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


노을이 조금씩 지고 있었다. 낮동안 뜨겁게 사막의 땅을 달구던 태양은 조금씩 달의 계곡으로 사라져 갔다. 태양빛이 사라지고 난 후 하늘의 색깔을 본 적이 있는가 사막에서 보는 그 색은 한번 보면 절대 잊지 못할 핑크빛이다. 우주의 어느 외로운 행성에 불시착한 지구인처럼 한동안 우리는 그 색에 취해 말없이 달의 계곡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타카마를 떠나고 K를 다시 보지 못했다. 엘칼라파데 호스텔에서 한국인들이 나누는 대화들 속에서 K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K는 꽤 알려진 사람이었다. 눈에 띄는 외모와 잘 어울리지 않는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는 조금 다른 쪽이었다. 여행자들이 만든 단체 톡방에 걸려 있는 K의 프로필 사진에 대한 이야기였다. K와 누군가의 뒷모습, K와 누군가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자, K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실루엣. 그 누군가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인 것 같다는 게 그들 사이의 화제였다.


방으로 돌아와 페이스북 계정을 열어보았다. 아타카마를 떠나며 K와 페이스북 주소를 나눈 후 계정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타임라인을 올리다 문득 K의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넌 비정상이야. 확실히 이상해. 하지만 비밀인데...멋진 사람들은 다 그래.
-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쩌면 아타카마에서 K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이상하고도 멋진 사람이란 걸. 언젠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 술 한잔 하자는 댓글을 남겼다.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물론.


20180402_200142.jpg 너의 이름은 산페드로 아타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