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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내 몸이 이상해

by A록


타말파 연구소의 표현예술치료 전문가 과정 수업을 들으러 제주에서 서울로, 부산으로 다니면서 생각했다.

‘이대로 비행기가 추락해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어. 난 지금 너무 행복해.’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마음껏 풀어놓아 다니게 하는 경험이 나에게 엄청난 희열을 주었다. 제주도에 폭설이 내려 우리 집 쪽으로 택시가 들어오지 않을 때도 나는 콜택시 회사에 사정사정을 해서 결국 공항으로 나가 비행기 표를 구해 수업을 들으러 갔고 남편이 일이 생겨 아이들을 봐주지 못한다고 했을 때도 베이비시터를 구해서 아이들을 맡겨놓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수업이 없는 동안은 표현예술치료에 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그리며 자율 학습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공부였다.

부산 수업에 가면 외할머니 집에서 잤는데 하루는 수업에 갔다가 늦게 들어온 내 얼굴을 보고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니 얼굴이... 예수를 닮아가네...”


그 말을 들은 나는

“예수? 내가? 와하하하!”

하고 고개를 젖히고 웃다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당겨 끄덕였다. 진짜 좀 어딘가 모르게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아서. 뭔가 확 풀어진 얼굴이랄까? 그 시기에 나는 한 없이 평화롭고 행복했으므로.


그런데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언제부턴가 계속 아팠다. 퉁퉁 부어서 접히지가 않고 쑥쑥 쑤시는 통증이 계속되어서 병원에 가봐야 하나 생각했다. 글씨를 많이 쓰는데 엄지손가락이 아파서 연필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자화상 공연을 한 달 남겨두었을 때 갑자기 열 손가락이 모두 아파왔다. 그러면서 오른쪽 발바닥 한가운데가 걸을 때마다 아파서 절뚝거리게 되었다.


춤을 추면서 근육이 아프고 관절이 아픈 적이 많아서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몸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런가?’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목이 안 움직였다. 간혹 춤을 출 때 목을 너무 많이 쓰면 목 뒤가 뭉쳐서 아프기도 한데 그 정도의 뭉침이 아니었다. 조금 움직여보니 극심한 통증이 따라왔다. 식은땀이 났다.


‘내 몸이 이상해...’


주위에서 류마티스 관절염일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류마티스 내과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다. 문진표에 류마티스 관절염의 여러 가지 증상이 나열되어 있었고 경험하고 있는 증상에 표시를 하라고 했는데 그 문장들을 보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의 상태를 하나하나 아주 자세히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는 ‘혀가 바싹바싹 마른다.’는 문장도 있었다. 그때 내 혀는 거의 사막 수준으로 메말라 있었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사라지지 않는 그 무시무시한 혀의 건조함이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이었다니, 놀랍기만 했다. 혀에는 관절도 없지 않은가!


류마티스 관절염이 거의 확실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다.


글, 그림 by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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