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by A록


일주일 뒤 친구와 함께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류마티스 관절염입니다. 염증 수치가 꽤 높으니까 지금부터 약을 잘 드셔야 되요. 안 그럼 손가락 발가락 관절 변형이 반드시 올 겁니다.”

의사는 퉁명했고 친구는 확진을 받고 멍한 나를 대신해 이런 저런 약의 부작용과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의 호전 가능성에 대해 오랫동안 질문을 했다.


통증이 계속 심해지는 몸을 이끌고 한 달 뒤에 열릴 공연을 위한 자화상을 그렸다. 시장에서 광목천을 끊어다가 방바닥 가득 펼쳐놓고 아크릴 물감을 섞어 칠하고 또 칠했다. 몸에는 힘이 없고 손가락, 손목, 발 관절은 욱신거리면서 아프고 목은 돌릴 수가 없었지만 마지막 공연을 포기한다는 생각은 스쳐지나가는 정도로도 하지 않았다. 그 무대에서 죽는다고 해도 하고 싶었다.


그 공연을 마지막으로 춤을 못 출 수도 있다는 절망감에 그림을 그리는 몸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 같았다. 쪼그리고 앉아 그림을 한참 그리다가 일어섰는데 순간 머리가 핑! 하면서 눈 앞이 캄캄해지더니 얼굴이 그림으로 곤두박질치며 쿵! 하고 쓰러졌다. 땅에 세게 부딪친 얼굴과 넘어지면서 짚은 손목으로 쏟아져 내리는 통증이 너무 지옥 같아서 잠깐이라도 좋으니 제발 정신을 잃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을 꼭 감고 호흡을 뒤죽박죽으로 하고 있었다.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이 느껴져서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 한쪽과 머리카락과 몸에 물감을 묻히고 그림 위에 쓰러져있는 내가 보였다. 비참했다. 호흡은 여전히 고르지 못 해 내 귀에 ‘헉...헉...’하는 내 숨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있는 찰나에 열린 방문 앞에 서 있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친구는 내가 쓰러지는 순간을 목격했는지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괜찮아? 도와줄까?” 하고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고 나는

“문 닫아... 당장!” 하고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서 소리를 질렀다.

친구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 친구는 나와 병원에 같이 간, 누구보다 내 몸 상태를 잘 아는 친구였지만 그 순간을 나누기는 죽어도 싫었다. 그런 모습을 보인 것이 수치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텅 빈 껍데기가 와르르 무너져버렸다는 생각, 모든 애씀이 결국엔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진 채 땅에 내동댕이쳐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닫힌 방 안, 한쪽 구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짐승처럼 울었다.

‘나는 무너진 거야...붕괴한 거야...아흐흐흐흑...너무 불쌍해...내가 너무...불쌍해...흐흐흐흑...’

내가 가여워서 울었다. 참고, 견디고, 또 참고... 이제야 좀 자유로워지나 했는데, 이제야 예수 같은 얼굴로 한 번 살아보나 했는데... 그동안 노력했던 시간들, 행복했던 시간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 울었다.


끝을 모르는 병마와 싸워야 한다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얼마나 더 아파야 할까, 얼마나 더 몸이 굳어질까, 평생 이렇게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되면 어쩌지...


나는 마지막 자화상 공연 때 빛과 어둠을 반반씩 가진,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달님 얼굴의 그림을 걸었다. 울고 있지만 웃고 싶은 소망을 담은 그림이었다. 견딤과 붕괴와 희망을 주제로 춤을 췄는데 이것이 나의 마지막 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혼신을 다해 췄다. 추고 나니 선명한 희망이 조용히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큰 위안이 됐다.


글, 그림 by 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