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 수 없는 것들.
아이들 손잡기.
아이들 머리 묶어 주기.
아이들 안아주기.
아이들 머리 감겨주기.
아이들 얼굴과 몸에 로션 발라주기.
글쓰기, 그림 그리기.
두 손으로 물 받아서 세수하기.
자다가 이불 끌어당겨서 덮기.
파리잡기, 모기 잡기.
박수치기.
악수하기.
반찬 뚜껑 열기.
냉장고 문 열기.
방 문 열기.
똑바로 걷기.
빨리 걷기.
뛰기.
열 손가락을 지배하던 통증이 손목까지 번져왔다. 뼈가 부러져서 부어오른 손목을 누가 꽉 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아파도 되나 싶은 통증이 손목에서 떠나질 않았다. 힘을 주면 통증의 강도가 세지기 때문에 손목을 거의 쓰지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수로 어딘가에, 누군가와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나는 늘 두 팔을 몸 안 쪽으로 모으고 다녔다. 그래도 실수로 어딘가에 부딪치거나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어떤 동작을 했을 때는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아 눈을 꾹 감고 호흡을 거칠게 하며 원래의 통증 레벨까지 되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물 잔을 들 수 없어 물을 못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면 방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어 밖에 누구 있냐고 문 좀 열어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다. 반찬 뚜껑을 못 열어서 아이들이 열어주고 냉장고 문을 못 열어서 아이들이 열어주고 윗옷과 잠바를 입지 못 해서 아이들이나 남편이 입혀주어야 했다. 윗옷을 바지 안에 집어넣는 일 조차 손목이 너무 아파 엄두를 못 내고 자다가 추워서 이불을 덮고 싶은데 끌어당기지를 못 해 벌벌 떨면서 자야했다.
글씨 쓰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손가락에 연필이나 색연필을 끼우고 힘을 주어 뭔가를 쓰고 그리는 일을 까맣게 잊었다. 하는 수 없이 운전을 해야 할 때는 그나마 덜 아픈 한 손과 다른 쪽 팔꿈치를 이용해 핸들을 돌렸고 기어를 바꿀 때는 오만상을 다 쓰며 “으악!”소리를 질러야했다.
젓가락을 쓸 수 없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먹는 것도 겨우 했다. 두 손으로 세수를 어푸어푸할 수가 없어 샤워기를 힘겹게 들고 물을 뿌려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는 날은 거의 죽는 날이었다. 부엌살림과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전부 남편이 도맡아 했기 때문에 내 한 몸 정도는 내가 알아서 건사하려고 용을 썼는데 그 최대치가 머리 감는 일이었다. 머리를 감은 날은 손목을 붙들고 오랫동안 끙끙 앓아야 했다.
그리고 밤. 밤은 고차원의 통증의 세계가 열리는 시간이었다. 체온이 떨어지면 더 아프기 때문에 한 여름에도 두 손과 손목을 충분히 감싸는 장갑을 끼고 잤는데 자다가 나도 모르게 장갑 한 쪽이 벗겨지면 그 쪽 손은 다음 날 오전 내내 들어 올리지도 못 하게 되었다. 자면서 통증이 있는 부위로 혈액이 쏠리면 더 아프기 때문에 나는 두 팔을 하늘을 향해 90도로 뻗고 자거나 양쪽에 베개를 받쳐 두 팔을 위로 향하게 하고 잤는데 자다가 손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지면 “으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자야되니까 떨어진 손을 다시 올리고, 또 떨어지면 “으악!”하고 다시 올리고를 반복하면서 잤다.
뻣뻣하고 아픈 목 관절 때문에 목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 했고 벌리면 빠질 것 같이 아픈 턱 관절 때문에 음식을 잘 못 먹을 때도 있었다. 발바닥, 발가락, 발목으로도 통증이 서서히 침투해왔고 팔꿈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무릎도 얼음이 올려져있는 것처럼 시렸다. 온 몸이 류마티스라는 이름을 가진 고약한 통증으로 들썩였고 삐그덕 거렸고 붓고 열이 났다. 눈을 뜨고 있을 때나 눈을 감고 자고 있을 때나 나의 몸 구석구석에서는 고통에 시달리는 몸의 비명소리가 무음으로 처리되어 터져 나왔다.
가장 속이 상하는 것은 아이들을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두 팔을 뻗어 안아주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빗어주거나 묶어주거나 씻겨주거나 하는 일들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눈으로 바라보고 입으로 말 하는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 눈과 입마저 고통에 찌들어 손이 베풀지 못 하는 사랑을 넉넉히 채워주지 못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된 기분이었다. 불을 훔친 죄로 코카서스 산 절벽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혀야했는데 없어진 간이 다음 날 다시 생겨나는 바람에 날마다 똑같은 고통을 느껴야했던 프로메테우스. 그 고통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기에 아침에 눈을 뜨는 것 자체가 너무나 두렵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처럼? 나에게 존재한 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오로지 버티는 지금 그 순간 밖에 없었다. 당장 조금만 덜 아프고 내가 내 몸을 스스로 챙길 수 있으면 다행인 그 순간 밖에. 그렇게 5년을 살았다.
글, 그림 by 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