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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 지금 불타고 있니?

by A록


병이 빠른 속도로 온 몸으로 퍼지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준 엄청난 양의 스테로이드제, 소염진통제, 면역억제제를 부엌 찬장에 넣어만 놓고 먹지는 않았다. 먹으면 속이 울렁거리고 속쓰림이 심했고 그 약들의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먹기가 무서웠다.


진단을 받은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우리 마을에 쑥뜸 치료를 하시는 분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에 있는 이런저런 병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분을 맞이했다.


성경책에서 봤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이 마을에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그 마을의 앉은뱅이, 절뚝발이, 온갖 희귀 질환을 가진 자들이 쏟아져 나와 그의 손길이 닿기를, 그의 옷자락이라도 한 번 만져보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손을 뻗고 소리를 지르고 눈으로 좇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병자들 중에 한 사람이 되어 절뚝거리며 서서 그 장면 안에 있었다.

쑥뜸 전문가인 그 분은 체구가 작고 진솔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쑥뜸은 그분의 아버지 때부터 수많은 환자들을 고친 치료법이라고, 암환자들도 많이 고쳤다고 하시며 한 명 한 명 자세히 상담을 해주셨다. 나에게도 반드시 완치될 거니까 걱정 말고 쑥뜸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오케이! 매달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분이 하시는 쑥뜸은 일반적으로 한의원에서 해주는 쑥뜸이 아니었다. 어마무시하게 뜨겁게 그러나 피부에 직접 불을 대지 않는 방법으로 쑥의 약 성분을 몸속에 집어넣는 신기한 치료법이었다. 한 방에 뜨는 쑥의 양이 성인 여자의 손바닥만 한 크기와 두께여서 꽤 많았다. 그래서 더 뜨겁고 효과가 좋았다.


쑥 아래에는 솜을 한 장 까는데 그 솜은 그냥 솜이 아니라 쑥 발효액을 적셔서 말린 솜에 거즈를 두른 것이었다. 쑥 발효액을 넣은 이유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이고 솜에 거즈를 두른 이유는 솜이 피부에 직접 닿으면 이리저리 다 흩어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쑥 패드라고 불렀다. 틀에 넣어 성형한 납작 동그란 쑥을 쑥 패드 위에 올리고 편평한 윗부분만 싹 태워서 두꺼운 박스 종이로 만든 누름판으로 눌러서 끈 다음에 쑥 패드 쪽을 피부에 대고 꽉 누른다. 쑥을 태우던 시뻘건 불꽃은 꺼졌으나 그 열기는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다.


쑥의 약 성분을 머금은 열이 피부를 거쳐 몸 안으로 들어가 신경을 타고 좍좍 뻗어나가다가 통증 부위를 후벼 파는데 돌아버리게 아프다. 동시에 피부가 타들어가는 것처럼 따갑다. 그걸 그냥 견디고 있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참다가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쑥을 피부에서 떼고 벌게진 피부쪽에 입김을 후 불어서 순간적으로 피부를 식힌 다음 재빨리 다시 갖다 댄다. 쑥의 열이 빠져나가지 않게 잘 잡고 하면 2분 정도는 기절할 만큼 뜨거운 맛을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 마을에 일주일에 세 번을 오셔서 쑥뜸을 알려주셨는데 나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파킨슨 증후군 진단을 받은 한 분과 함께 선생님께 직접 치료를 받으면서 배웠다. 첫날 척추를 쭉 떠주셨는데 불기둥 속에 들어가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가슴 중앙의 반대편 척추를 딱 뜨니 열이 등판 전체와 양쪽 팔과 손가락 끝까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열이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강력한 열이었다. 이글이글 활활 타는 불덩이가 몸 안으로 들어갔는데 신기하게 피부는 멀쩡했다. 양쪽 겨드랑이에서 땀이 콸콸 흐르고 얼굴과 귀가 벌게지고 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어... 어... 이게 뭐지? 나 지금 불타고 있니? 살아있니? 으아아악!!!’


정신이 혼미해졌다. 몸속이 불타는 거 같고 피부는 뜨겁고 따갑고 난리가 났다.

‘이렇게 염증을 태우는데 안 나을 수가 없겠구나.’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정도 열이면 아무리 심한 병도 다 태우지, 얄짤없지 싶었다.


선생님께는 류마티스 관절염의 원인 치료인 뇌 치료를 받았다. ‘고마쑥뜸법’을 연구하신 선생님의 아버지가 정해놓은 쑥뜸 자리가 있는데 뇌를 치료하는 자리는 등에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의 어깨와 날갯죽지 부근과 척추에 쑥뜸을 해주셨다.

둘째 하늘이를 출산할 때 아주 유용했던 라마즈 호흡을 쑥뜸 치료를 받을 때도 정말 잘 써먹었다.

"후우... 후우..... 후우..... 후.. 후.. 후.. 후!! 후!! 후!! 후!!! 으으윽!!!"


갈수록 빨라지고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들썩이는 몸이 불편하셨는지 선생님은 너무 참지 말라고 그냥 ㅏ한 번 떼면 안 되겠냐고 하셨지만 나는

"참을 수! 후우... 후우... 후우... 있!... 후.. 후.. 후.. 어요! 후! 후! 후! 후! 후!!!! 흐흐흐읍!!!!"

하며 독하게 참았다.

호흡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통증을 참아내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끄아아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치료실에서 뛰쳐나갈 것 같았다.


나는 매일 치료용 침대 위에서 짧은 죽음을 맞이했다. 나는 매일 치료를 받기 위해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며 “오늘도 테이블데스야... 테이블데스...”라고 중얼거렸다. 그것은 나의 결의이기도 하고 절망이기도 했다. 의사가 수술 중에 환자가 사망하는 것을 말하는 단어 ‘테이블데스’. 나는 매일 자발적으로 ‘테이블데스’를 했지만 고통스러운 그 한 시간이 늘 무섭고 힘들었다. 그래도 얼마나 참고 뜨겁게 뜨는가에 따라 통증이 줄어드는 정도의 차이가 커서 대충 뜨고 내려올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는 원인 치료를 받고 나는 통증 부위를 치료했다. 손목과 팔꿈치, 무릎, 발목은 내가 불을 붙여서 쑥뜸을 했는데 토치를 누르고 누름판으로 누르고 몸에 대고 누르는 모든 동작이 손목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손목이 많이 아픈 날은 토치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덜덜 떨면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쑥뜸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워낙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손이 느려서 밥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는 쑥에 매달려있어야 했다. 안 그러면 통증에 잡아먹혀 죽을 것 같았다.


일단 제일 아픈 손목을 치료한 다음 양쪽 팔꿈치, 양쪽 무릎, 양쪽 발목을 치료하고, 그러면 다시 손목이 쑤시면서 아파와서 또 손목을 뜨고 그러다 보면 또 팔꿈치가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 발목이 아파서 차례대로 뜨고 그러면 또 손목이 아파서 손목을... 한참 그러다 고개를 들면 창문 밖으로 달이 보였다. 밤에 자는 동안은 늘 아프지만 너무 아파서 도무지 잠이 안 오는 날에는 ‘뒤척일 시간에 차라리 쑥뜸을 하자.’ 하고 퀭한 눈으로 불을 켜고 앉아 쑥에 불을 붙였다.


내 방에는 자바라 연기 흡입 호스가 달린 환풍기가 설치되어있었다. 연기를 빨아들이지 않으면 창문을 열어놓아도 순식간에 방이 하얀 연기로 가득 차기 때문에 제일 먼저 환풍기부터 설치를 해야 했다. 한낮에는 쑥뜸원에서 쑥뜸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집에서 쑥뜸을 했는데 4층 빌라의 2층에 살 때는 아랫집과 윗집 분들이 한 번씩 우리 집에 와서는 담배 냄새 같은 것이 많이 나는데 혹시 담배를 피우냐고 물었다. 그래서 몸이 아파서 쑥을 태워 치료를 하고 있다고 설명을 드리니 그러면 괜찮다고, 치료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이지 너무 감사했다.


그러다 슬쩍 드는 생각, ‘빨리 낫고 담배를 피우는 거야!!! 쑥 연기인 줄 알 테니 마음 놓고 피울 수 있어!!!’ 하지만 그 집에 사는 2년 동안 너무 아파서 담배를 손에 잡을 생각조차 못 하고 죽어라 쑥뜸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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