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만 원...

by A록

H 아버지의 부친상이 떴다.

H는 나의 초등학교 동창이자 두 번째 사랑이다. 지금도 친구로 지내고 있는.


로스쿨을 나와 미국 국적의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을 하고 귀여운 딸을 낳아 가정에서 충만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녀석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병이 있으셨는지 갑작스러운 사고인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경황이 없는 사람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그래서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어.'라는 문자만 짧게 보냈다.


6학년 때 가족 소개 시간에 H가 앞에 나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저희 아빠는 디자이너이십니다."


나는 그때 키가 커서 꽤 뒷 쪽에 앉아있었는데 그 말에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목을 길게 빼고

더 자세히 들으려고 H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머릿속으로는 '아빠 직업이 디자이너일 수도 있구나...' 하면서.


마냥 신기했다.

아빠들은 그냥 회사에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우리 아빠는 엔지니어고 설계 같은 걸 하니까 늘 회색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데

쟤네 아빠는 디자이너니까 작업복이 없겠네? 빨간색 옷에 파란 스카프 같은 걸 하고 다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의 틀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면서 왠지 디자이너의 아들인 H가 더 멋있어 보였다.


위로 세 명의 누나가 있는 H는 아버지에게 특별히 큰 사랑을 받았을 거다.

그래서 지금 그렇게 멋진 남자가 될 수 있었을 거다.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 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카톡으로 부조금 10만 원을 보냈다.

H와 카톡 친구가 아니어서 못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전화번호로 친구 등록을 할 수 있다는 게 생각이 나서 카톡 친구를 맺은 다음 그렇게 했다.


보낸 후에 '100,000'이라는 숫자를 계속 봤다. 아무리 봐도 너무 적다.

실수로라도 더 보냈어야 하는데...

'0'하나가 더 붙었어야 하는데...

장례식에도 못 가보고 돈을 보내면서 10만 원이라니......


조금 더 생각하고 보낼걸... 후회가 되었다.

그런데 100만 원은 좀 많긴 많다. 그럼 20이라도 보낼걸......


H가 내 삶에 준 수많은 좋은 것들에 대한 보답을 돈으로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아......!


돈을 더 써야겠다. 단위를 높여야겠다.

특히 타인에게 보내는 돈.


일단 10만 원이 생각나면 20만 원을 보내야겠다. 거기서부터 하자.

그다음엔 2를 3으로 바꾸고!


H가 실컷 애도할 수 있길 바란다.

사랑한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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