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헨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암초를 만났다. 그것은 보통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생길 수 있는 일인데 우리의 캐리어 가방이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닌 하필 바퀴 부분이다.바르샤바 공항에서 내려서 수화물을 찾고 가방을 끌어보니 좀 끌리는 게 이상하다 싶더니 아뿔싸 가방이 잘 안끌리는 것이었다.
"바퀴 망가지긴 했는 데 사무실 빨리 들어가야 하지 않아?"
"사무실 들어가는 것도 중요한 데 이건 꼭 짚고 넘어가야 해!!!"
대략 초난감 상태로 5초를 멍하니 있다가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만 이리저리 하다가 일단 대책을 마련해야 겠다 싶어서 현지 공항의 항공사 사무실로 찾아갔다.
"execuse me . My bag was broken"
"upstairs and go to information"
"okay. Thanks"
우리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예상했던대로 자기 관할이 아니라는 듯 여기 가봐라 저기 가봐라 하며 우리의 진을 빼놓는 작전을 쓰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인포메이션 데스크로 찾아갔고 거기에서 알려준 항공사 발권센터로 다시 갔고 이후 발권센터는 다시 항공사 고객센터 같은 곳을 알려주었다. 항공사 고객센터의 직원과 발권센터 모두 서로 자기가 처리하기 귀찮아서인지 우리를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게 아닌가? 이런 십장셍을 봤낭...
이렇게 윗층 아래층을 트렁크를 질질 끌고 다니면서 왔다갔다 하기를 5번. 결국 우리는 제대로 된 직원을 만날 수 있었고 출국장 안쪽으로 들어가 항공사 직원과 이야기하면서 서류에 작성하는 것을 끝으로 일단 마무리를 하였다.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프랑크푸르트를 들리라고 한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지만 다시 또 한번의 난관이 있는 것은 확실하네. 어찌되었든 이렇게 폴란드에서 첫 경험은 가방으로 시작되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해보니 공산주의 느낌이 난다는 것은 기우였고 단지 나의 편견이었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아서 거친 경제위기에서 벗어나 값싼 노동력으로 글로벌 공장을 유치한 덕에 나름 경제성장률이 유럽국가중 견실하며 사람들의 얼굴에도 활력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매리엇 호텔에서 나오는 길에 광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우리와 서스름없이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에 여행오기 전의 약간 두려운 느낌은 모두 사라졌다.
폴란드에는 식당만 가더라도 정말 미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 서빙은 기본이고 손님들도 제법 멋쟁이들이 많다. 내가 간 곳은 gril&co 라는 beef 전문식당인데 서빙보는 웨이트리스와 기념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 폴란드 여인은 이렇게 같이 사진찍고 손님과 말섞는 것이 처음이었는 지 쑥스러운 기색이었고 다른 웨이트리스는 이런 그녀를 마냥 부러운 듯 시샘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날도 이곳에 와서 최후의 만찬을 즐겼는 데 우리의 마음을 담아 냅킨에 롤링 페이퍼를 만들어 글을 적어 주었더니 아주 조금 감동하는 눈치였다. 그때 냅킨에 적었던 것은 '당신을 만나서 폴란드가 정말 친절한 나라로 느껴졌으며 항상 행복하고 건강해라' 뭐 이런 문구였었다. 다시 가게 되어도 그 폴란드여인이 없을 테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폴란드 인상은 아주 좋게 뇌리 속에 자리잡았다.
이튿날은 폴란드내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갔는 데 이날 꼬마아가씨 손님이 있어서 우리나라 돈을 건네며 좀 친해지려고 했더니 동양인을 처음 보는 지 울음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한국에 두고 온 딸이 문득 생각나서 한국 돈 가진 것이 천원짜리라서 이것을 주고 싶었다. 물론 만원짜리 줬어야 하는 데 미안하다. 내가 돈을 주려고 했으나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다소 경계의 눈빛을 처음부터 띄었고 이런 모습을 엄마와 아빠는 신기한 듯 사진에 담는다. 한국에 있는 딸이 생각나서 그랬는 데 이해해주렴? 꼬마아가씨.
식당을 나와서 바르샤바에 있는 과학박물관에서 매표를 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동양의 한 여학생이 표를 끊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사람인 듯 했으나 일행 중 한 사람이 중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니짜오 셔머밍즈?"
"call me smilggiri"
우연찮게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일행덕으로 그 대학생 중국인 친구와 박물관 투어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고 방학동안 이렇게 유럽을 돌아다녀 보는 것이었다.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다소 쓸쓸해보일 수도 있는 데 얼굴에는 굉장한 에너지와 특유의 여유가 묻어나와서 나에게도 좋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았다. 스미끼리라고 외우기 쉽게 호칭하고 점심도 같이 먹으면서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이 힘들텐데도 불구하고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는 어학연수 정도만 생각했었고 밤낮으로 당구장을 기웃거리거나 시험때면 도서관에서 쳐박히거나 해서 좁은 시야를 가졌었던 것 같은 데 외국에 이렇게 유학을 오면서 혼자 여행하는 그 스미끼리 덕분에 아주 잠시나마 지나온 대학 생활이 후회스러웠다. 나도 이런 감흥을 미리 먼저 느꼈더라면 누가 내게 말해줬더라면 다른 세계관이 잡혔을 지도 모를텐데...
'후회는 나중에 하라고 이 사람아 후훗..'
다음 행선지로 폴란드에서 차로 4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크라쿠프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야 하나 렌트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일단 렌트를 하기로 결정하고 호텔안에 있는 렌트카 업체로 가는 도중 국제운전 면허증을 보니 아뿔싸 유효기간이 몇일 지난 것이다. 이걸 미리 확인했어야 하는 데 어쩌지 하고 조마조마 하면서 렌트카 업체 직원과 보험 및 가격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렌트카 직원에게 이리저리 말을 걸었고 다른 한명은 서둘러 일처리를 하게끔 다중 연발 폭격을 퍼부은 덕에 다행히도 그 직원은 여권 유효기간을 보질 못했고 일단 렌탈하는 데는 성공했다. 크라크프로 신나게 시동을 걸고 출발하였다. 폴란드에는 예전 대우 자동차 공장이 있어서 그런지 대우차가 상당히 많이 보였다. 우리를 데려다 준 볼보 자동차는 stop 시 자동 시동꺼짐과 start 시 자동 시동 켜짐이 있어서 그런지 에너지 절감과 환경에 앞장서는 것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크라크프라고 입력해서 2시간여를 내달린 끝에 마침내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대학교가 보였고 참아왔던 소변을 본 후 크라크프 광장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대학교의 이름은 Trasa Uniwersytecka 이며 아마도 Trasa 기술대학교가 아닌가 싶었다. 크라크프 곳곳에는 calesa 마차가 있는 데 전체가 하얀색깔이고 말만 브라운이어서 그런지 도시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 겨울인데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나 또한 타고 싶었으나 말을 타고 달린다면 지금보다 더 추울 것 같아서 skip하였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고 퍼레이드를 하면서 행진하는 한 무리의 폴란드 전통의상을 입은 마을청소년과 어른들은 나의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한참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는 데 정말 자유분방한 학생들이 친구의 생일 비디오를 찍어준다고 하여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에게도 그 친구들은 접근해왔다. 수많은 생일축하 메시지 중 나도 그 비디오에 찍히게 되었다. 자기들의 베스트 프렌드인 여자 친구에게 한마디 해달란다. 나의 메시지는 '정말 생일 축하한다.본적은 없지만 정말 좋은 친구들 둔 거 같아 부럽다' 뭐 이런식의 영어로 지껄였었다.
"Today is my girlfreind's birthday. please give me your message"
"oh~ congratulations. I envy you so much. You don't forget this video so long time"
나의 짧은 영어가 그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 지 모르겠다.
다음에 생일 축하 선물로 이렇게 비디오에 담아서 누가 내게 준다면 정말 황홀할 것 같다. 주위에 누구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