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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남추녀 Mar 22. 2023

마침내 봄은 온다는 믿음에 대하여




내가 봄을 기다렸을 때 봄은 멀리 있었다. 까마득히 먼 거리에서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동면에 들어간 다람쥐처럼, 개구리처럼, 혹은 동사 직전의 노숙인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추위를 견뎠다. 그 시절의 추위는 혹독했다. 모든 게 꽝꽝 얼어붙었다. 숨을 내쉬면 성에가 끼어 입과 코를 막아야 했다. 차디찬 거리를 함께 걸어주는 이도 없었다. 설령 함께 걸었다 한들 나는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우울증은 시야를 좁게 만든다. 오로지 나만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내 주위를 돌아볼 수 없게 만든다. 맹목(盲目)과 고립(孤立). 우울증이 한 사람을 서서히 파괴하는 방식.

때로는 담요 한 장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봄이 오리라는 믿음을 덮어야 했다. 그것은 막연한 믿음이었다. 살아서는 신을 증명할 수 없듯 겨울의 한 복판에서는 봄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신을 믿었고, 나는 마침내 봄은 온다는 믿음으로 살아갔다. 그래도 힘든 날에는 오래 전 스쳐지나가듯 봤던 유채꽃밭을 떠올렸다. 맑은 하늘과 그 아래 펼쳐졌던 초록을 떠올렸다. 흐르는 냇물과 움트기 시작한 새싹을, 비로소 지저귀기 시작한 새들과 부드러운 바람을, 녹아내린 눈과 그 아래서 기지개를 켜는 개구리를, 달큼한 냄새를, 넉넉한 햇살을, 다 괜찮다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머리를 쓰다듬는 아빠의 커다란 손을, 떠올렸다. 다람쥐가 봄이 온 걸 알게 되는 건 나무가 기지개를 켜는 소리를 듣기 때문이래, 라고 누군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 나는 귀를 기울이며 겨울을 견뎠다. 봄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믿음은 늘 보상받는가? 아니다. 뱀의 간교한 속삭임이 들릴 때면 나는 번민했다. 겨울에 생을 끝내기는 참 쉬운 일이었다. 나는 다만 봄을 기다렸다. 다람쥐처럼, 개구리처럼.


그러고 마침내,

봄이 왔다.

봄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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