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럽에 살기 전까지,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카페를 가자고 해서, 함께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랬던, 내가 스페인에 살면서 커피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쌈 씨름하면서도 시큼한 맛들이 입속으로 들어올 때, 그 맛들의 향연 속에서 커피의 가치를 배웠다.
하지만, 나에게 진정한 커피의 힘을 느끼게 한 것은 비 내리는 오늘 같은 날이었다. 2015년 가우디 워킹투어를 하던 신입시절. 나는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투어를 했다.
우산을 쓰면서 투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자료를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고, 멘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나의 설명이 훌륭하지 않았기에, 우산을 내던졌다.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의 변형된 모습을 파일을 통해 보여드렸다. 그리고 손님들이 다 이해할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설명을 하였다.
그리고 설명을 마치고 20분 정도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비 내리는 날에는 가이드도 힘들지만, 손님들도 금방 지치기에 커피 한 잔의 여유가 필요했다.
나는 손님들에게 가장 맛있는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를 소개하고, 신호등을 건넜다. 온몸이 비에 젖고, 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할 때, 문득 정신을 차린다.
나도 가이드이기 전에 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손님들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예쁘지 않은 카페에 들어간다.
"II caffe di Francesco"
화려하고 멋지지 않아 좋고, 현지인만 가득 차서 좋은 곳. 나는 손님들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20분의 그 시간을 오롯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나의 차가워진 몸을 데우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이곳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설탕 하나를 가득 부운 카페라테 한 잔이 나에게는 그 어떤 음식보다 큰 기쁨을 주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커피였다.
그 20분의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 어떤 누구도 내게 말하지 않고, 오직 커피만이 나의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와, 내 코를 자극하는 커피향이 나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후루룩~들어가는 커피 한 잔의 맛은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10,000보를 걸으며 설명했던, 나를 위로해 주었다. 오늘도 잘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너는 끝까지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볼 때, 유럽의 낭만 속에 살고 있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현실은 낭만적이지 많은 않다. 더운 날 햇볕을 다 많고 일해야 하고, 추운 날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일해야 한다.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투어 전체를 진행하면서, 온몸이 젖는 것은 다 반사이다. 알고 있지 않은가?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그러나, 나는 가이드로서의 삶이 행복했다. 힘들고 괴로워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나는 그 고생을 하면서도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을 매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시 30대로 돌아간대도, 나는 가이드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지내고 싶다.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이 글을 쓰는 오후도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비 내리는 창가를 바라보다, 나는 2015년 12월의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다녀왔다.
춥고 배고픈 1년 차 가이드 시절. 최저시급을 받으면서도 행복했던 그 시절의 아론이 생각난다.
"II caffe di Francesco" 스페인 바르셀로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체인점 카페이다. 나는 카사바트요 옆에 있는 그 카페점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그곳을 좋아한 것은 커피 한 잔이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그 공간 안에서만큼은 오로지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오롯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돌볼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결국,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바르셀로나에서 사람이 드문 그 카페를 찾았던것 같다.
나를 돌보고 잠시 쉬어가기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