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2004년, 대학 입학식 날, 친구가 없던 나는 혼자 빵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지나갔고 놀라서,
먹던 빵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때의 나는 사람의 시선이 내 존재보다 더 중요했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고 배웠다. 그래서 관계를 잃는 일은 내가 부정당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스무 살의 나는 친구가 없으면 불안했고, 서른의 나는 사람에게 잘 보이지 못하면 불안했다.
상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하루 기분이 통째로 흔들렸다.
‘혹시 내가 실수했나.’
‘오늘 나를 별로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관계에 매달릴수록 내 마음은 점점 작아졌다.
마흔이 되어 교통사고를 당했다. 몸도 마음도,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그 시간은 강제로 ‘혼자 있는 시간’을 건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했다. 그때 알았다. 사람은 함께 가는 듯 보여도 결국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 함께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모든 관계는 유한하다. 영원할 것 같은 인연도 방향이 달라지면 멀어진다. 그것은 배신도 실패도 아니다. 그저 흐름이다.
생각해보면 나를 잃으면서까지 지킬 관계는 없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내 마음을 버리지 않아도 됬었다.
나를 지키는 사람이 결국 건강한 관계를 만든다. 혼자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될 때 관계는 의존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외로움 때문에 붙잡는 관계와 여유 속에서 만나는 관계는 다르다. 혼자서도 단단한 사람은 억지로 매달리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을 실패처럼 여긴다. 하지만 고독을 견딜 줄 알 때 사람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고 혼자 영화를 볼 수 있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어색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인간관계는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걸을 수 있는 선택이 된다.
창스 킹슬리는 말한다.
"제 갈 길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은 길을 비켜준다."
내 길을 아는 사람은 누가 옆에 있든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은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니까. 하지만 내가 나와 친구가 되면 남는 것이 있다.
평온이다.
혼자 있는 시간 끝에 결국 남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이젠 관계로 힘들땐, 사람을 붙잡기보다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본다.
떠나는 인연보다 내 안에 남는 고요가 인생을 선명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