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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론의책 Oct 28. 2024

로마의 휴일

2017년의 어느 날이었다.

"아론 씨 이탈리아 가서 참관하고 와요" 스페인 3년 차 가이드 시절, 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로마를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바쁘게 가이드 생활을 하느라 활력을 잃어가던 중 제안받은 로마 출장은 내 삶에 단비였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50분 만에 로마 공항인 '피우미치노' 공항에 도착했다.


 

https://www.rome-airport.info/

바르셀로나보다는 작아 보였지만, 그 낯설음이 참 좋았다. 내가 사는 곳과 다른 도시의 광경이 주는 낯섦이 나를 설레게 했다. 

기차를 타고 테르미니 역을 향했다.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테르미니 역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 같은 곳이다. 모든 이들이 만나는 만남의 광장 같은 곳.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고 30분 만에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https://www.viator.com/en-CA/tours/Rome/Private-Arrival-Transfer-Rome-Train-Station-to-Hotel/d511-54


테르미니 역에 도착한 순간, 느껴졌다. 이곳이 세계인들의 도시 로마이구나.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잘못하면 사람들에 의해 쓸려갈 것 같았다. 

그래서 백팩을 앞으로 빼고 소매치기가 없는지 곁눈질을 하며 캐리어를 밀고 나갔다. 다행히 숙소까지 오는 동안 소매치기는 만나지 않았다. 

가이드이기에 완벽하게 여행을 잘 하고 다닐 것 같지만, 사실 타 지역에 가면 나 역시 똑같은 여행자일 뿐이다. 그래서 짐이 많을 때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짐부터 숙소에 두고 몸이 가벼워지고 나서 생각하게 된다. '로마에 왔으니 커피부터 때리자!' 유명하다는 커피점을 찾지 않았다. 


https://www.tripadvisor.com/Restaurants-g187791-c8-Rome_Lazio.html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오히려 동네 작은 bar에서 한잔 마시고 싶어 들렸다. 낡은 문을 열어젖히자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듣고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 바리스타가 나를 바라보았다.


키는 170cm, 얼굴은 구릿빛, 머리숱은 많지 않은 곰돌이 푸 같은 인상의 바리스타가 거기 있었다. "una taza de cafe por favor" 로마에 왔지만 당당하게 스페인어로 주문을 했다. 


그는 조금 당황한듯하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커피를 내렸다. 나는 그에게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다고 말을 건네고, 부족한 스페인어를 이해해 달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는 자신은 여기서 20년째 바리스타를 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 스페인어로 주문한 것을 처음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처음'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로마에 처음 왔는데 무엇을 봐야 하냐고? 


그는 내게 답했다. 무엇을 볼 필요가 없다고, 그저 돌아다니면서 느껴보라고, 그때 로마가 당신에게 말을 건넬 거라고.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내게 이탈리아로 말했고, 나는 그에게 스페인어로 말했다. 우리의 대화는 LP 판이 튀는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거라 생각했다. 


https://www.dersut.it/blog/aroma-del-caffe-aiuto-matematica-analisi

그와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먹은 에스프레소 한 잔은 꽤 묵직했다. 에스프레소 한 잔에 설탕 한 스푼을 넣고 휠이 저어 입안에 털어 넣을 때 로마를 만났다. 


‘단단하고 깊은 커피의 맛’ 그 맛이 로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나저나 바리스타가 말한 느껴보라는 말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지식적으로 배워야 여행의 갈증이 해소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그와 인사를 나누고 문밖을 나서 로마의 세계를 걸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나는 보도블록과는 전혀 다른 단단한 반석들이 걸을 때마다 느껴졌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온 수많은 반석들을 보면서 왜 예수의 수제자 이름이 베드로인지 알 것 같았다. 

베드로의 이름 뜻은 반석이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돌을 의미한다. 로마에 와서 로마의 길을 걸으면 알게 된다. 얼마나 단단한 돌인지 말이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베드로를 통해 만들겠다고 말한 예수의 말이 얼마나 실존적이지 느껴볼 수 있다. 그렇다. 로마는 그저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는 보화 같은 도시였다. 


나는 낯설은 흥분을 느끼며 콜로세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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