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마신 에스프레소는 묵직했다. 어퍼컷을 맞은 것 같은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온몸을 흐른다. 바리스타와 인사를 하고 콜로세움을 향해 걸었다.
나에게 콜로세움은 글래디에이터로 기억된다.
콜로세움에 내 던져진 검투사가 맹수와 피를 흘리며 싸우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목놓아 소리를 외쳤다. 마치, 더 맹렬하게 싸우라는 것만 같았다.
'모두 미친 것이 아닐까?'
중학교 2학년 시절 내가 인식하는 로마시대는 미친 시대였다. 팍스 로마나라고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정상적이지 않아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콜로세움에서 열광하는 사람이나, 그 안에서 서로를 죽이는 검투사들이나 모두 미쳐 보였다.
오현제 중 하나였던 아우렐리우스의 사망 이후 그의 아들에게 황제의 자리가 돌아가면서, 위기는 시작되었다. 평화시대가 끝나고 미치광이 황제는 콜로세움을 자신의 정치적 힘을 과시하는 놀이터로 이용하였다. 심지어는 자신이 검투사가 되어 미친 듯이 노예 검투사를 죽이기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과연 로마 시대는 누구를 위한 시대였을까?'
어느덧 나는 콜로세움에 도착해 있었다.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건축물을 살폈다. 그리고 옆으로 이동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아치를 세워보았다.
'각 층마다 80개의 아치, 총 240개의 아치인가?'
240개의 아치를 통해 이루어진 완벽한 원형경기장은 2000년의 세월을 이겨냈다. 고대시대부터 현대 시대까지 수많은 고난의 세월로 생채기는 가득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것이 감동스러웠다. 그리고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나에게는 로마시대 최고의 건축물로 인식되는 콜로세움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특별히, 로마시대를 살았던 검투사들과 기독교인들에게는 끔찍한 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5만 명 이상이 원형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좌석들을 보면 더 기가 찬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경기장과 가까운 하부의 좌석을 배정받았다. 계급이 낮을수록 경기가 자세히 보이지 않는 위쪽의 좌석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끔찍한 장소이지만, 장식은 너무나 화려한 모습이라 아이러니하다. 기둥을 보면서 그리스를 떠올린다. 1층은 남성적인 도리아식, 2층은 여성적인 이오니아식, 3층은 두 가지가 합쳐진 코린트식이다.
공연을 해도 좋을 만큼 공명감도 괜찮은 그곳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 살육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는가'가 생각난다. 성당의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론다의 다리에서 처형당했던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콜로세움에서 웅장한 악기가 연주될 때마다, 피를 흘리며 죽어야만 했던 수많은 인생들이.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누구를 위해 콜로세움은 지은 것인가?'
A.D 70년 베스파시아누스 시대, 폭군 네로 황제 시대에 만들었던 그의 궁전이 허물어졌다. 그리고 그 장소에 콜로세움이 세워졌다. 황제의 사유지에서 군중에게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베스파시아누스는 유대 원정을 마치고 10만 명의 유대인 노예들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콜로세움을 건설할 것을 명령하였다.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황금과 부는 콜로세움 건축을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인 노예들은 로마에서 2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돌을 옮겨왔고, 로마인 건축가들은 작업을 수행하였다. 목재, 응회암, 석회암 등 다양한 석재들이 하나의 건축안에서 조화를 이루어갔다. 그것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 티투스 시대에 완성된다. 그리고 근처에 검투사 양성학교들이 함께 세워진다. 황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군중들의 잔혹한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서, 최적의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사실을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말하고 있다. 주인공 막시무스 역할을 연기한 러셀 크로 덕분에 콜로세움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 로마군 총사령관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노예로 전락한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 그의 고뇌와 슬픔, 삶을 향한 꺾이지 않는 신념이 콜로세움이라는 무대 위에 펼쳐졌다.
영화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멋지게 마무리되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로마에서 깨달았다. 그 경기장안에서 영화 같은 장면은 연출되기 어렵다는 것을 직접 보고 알 수 있었다. 원형경기장이 아름답고 웅장할수록 씁쓸함이 밀려왔다. 노예가 되어 콜로세움을 지었던 유대인들과, 처형을 당했던 기독교인들이 모습이 교차되었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감정을 느꼈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말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콜로세움에서 느껴졌다.
씁쓸한 마음을 접고싶어 동료들이 이야기해 주었던, 젤라또 아이스크림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