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일을 하지 않는 날 마주하는 바르셀로나는 아름다웠다. 가이드일은 매력적이지만 여행자의 삶보다 매력적일 수는 없었다. 일을 하지 않는 날의 아침은 특별했다. 내가 유럽에 살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 근처에 카페를 자주 갔다. 화려하거나 멋져서가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바르셀로나가 좋았다. 갓 구운 빵에 버터를 발라 베어 물었다. 바삭함이 고소함으로 변주할 때까지 오물거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라본 푸른 하늘은 어제와 같았지만, 오늘은 더 예뻐 보였다. 내 마음처럼.
아침에 먹는 오렌지 주스를 사랑했다. 한잔의 오렌지 주스는 그날의 행복을 가득 충전시켜 주었다. 아무리 빵이 맛있어도 오렌지 주스를 이길 수 없었다. 즉석 해서 만든 오렌지 주스 한잔은 한국에서 먹은 그 어떤 진미보다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혼자 피카소 미술관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가이드로서가 아니라 관람자로서 마주하는 피카소가 좋았다. 수많은 그림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그를 흠모했다. 그가 도적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이기에 사람으로서 그를 존경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예술가로서의 그를 존경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모하는 피카소의 10대 때의 그림을 좋아했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고 싶어 했던 피카소의 열정과 욕망이 그림에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여행자들은 내가 하는 설명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나는 피카소의 변주하는 마음을 그의 그림을 통해 보게 될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왜냐하면, 그림은 주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 주석을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찾을 때 진짜 피카소를 만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중 난 청색시대를 참 좋아했다. 그 잘난 피카소가 죽고 싶어 했을 정도로 힘들어했던 시절의 그려진 그림.
Blue Period. 몽마르트르 언덕에 매춘부, 예술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는 그렸다.
자신의 삶에 비추어진 죽음의 그림자를 몽마르트르 언덕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본 것이라 느껴졌다. 예술의 도시 파리가 아름답기보다 추악하다는 것. 따뜻하기보다 현실은 차가운 것. 20대 초반에 피카소가 본 파리이고 몽마르트르였다.
그를 통해 알게 된다. 예술은 진실을 비추는 거짓이라는 것.
피카소 미술관 근처에 자주 가는 타파스바가 있었다. 12시 오픈인데 대기줄이 서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엘 샴파넷(El Xampanyet)에 가면 Bar(바)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주문했다.
이제 막 요리하여 나온듯한 다양한 타파스를 주문하여 맛보는 재미에 자주 갔었다. 때로는 내가 원하는 음식이 아니어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게 참 좋았다. 그런 당황스러움이 인생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정해진 틀 안에 갇힌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음식도 마찬가지이다.
늘 먹던 음식, 예상가능한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한다고 믿었다.
타파스를 다 먹고 밖으로 나오면 세상이 더 예뻐 보였다. 그 예쁜 하늘을 바라보며 수백 년 된 건축을 걷고 있는 순간이 참 좋았다. 카페 엘 마그니피코(Cafe el magnifico)에가서 마시는 꼬르따도(Cortado) 한잔이 그날 행복의 정점을 찍었다.
고소함 속에 스미는 약간의 산미가 거부감이 없었다. 우유와 커피의 1:1 비율은 나에게 완벽 그 자체였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걷는 보른지구는 내가 유럽에 살고 있음을, 내가 유럽을 여행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