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에는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9살 때였다.
학교 수업 중 갑자기 비가 내렸고, 나는 슬픈 눈으로 비를 바라보았다. 수업이 끝나기 전에 비가 그치길 간절히 바랐지만, 비는 끝내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거세졌다.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아이들은 교문 앞으로 나가 엄마를 기다렸다. 나는 먼발치에서 엄마와 함께 집으로 가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엄마가 혹시나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과, 엄마는 올 수 없다는 마음이 발을 동동거리게 하였다. 친구들이 모두 집에 간 후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9살의 내가 있었다.
책가방을 머리에 올리고 집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지금은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그 당시 나에게 집에 오는 길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비속을 달리며 온몸이 젖었다. 비에 젖은 건지, 땀에 젖은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 되어갈 때 집이 보였다.
숨을 헐떡이며 열쇠로 집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엄마는 없었다. 텅 빈 집의 한기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갔다. 나는 돈도 회사도 싫었다. 엄마와 아빠를 빼앗아 가는 존재들이 싫었다.
엄마를 향한 외로움은 허기로 내게 다가왔다. 엄마가 남겨놓은 식탁 위 컵라면이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컵라면에 따뜻한 물을 붓고 기다리는 3분의 시간을 좋아했다. 두 손을 컵라면에 대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컵라면을 먹으면서 엄마의 부재를 채웠다. 보고픈 엄마의 얼굴을 컵라면으로 채워가는 그 시간이 비 오는 날이면 떠오른다.
하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 가지는 컵라면을 먹고 나면 찾아오는 허전함이었다. 허기진 배를 채웠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시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컵라면이 아니라 엄마였다는 것을 시간이 흐른 뒤에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