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취업에 실패한 나는 한참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인가 봐…”
스스로를 자책하던 그 시기, 우연히 선택한 해외 봉사의 길은 내게 작은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코이카 해외 봉사단원으로 중남미 엘살바도르에 가게 되었다.
2012년 2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제주도도 가보지 못했던 내가 중남미라니...
생경한 경험에 온몸이 짜릿짜릿하고 흥분되었다. 하지만 그 설렘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바뀌었다.
비행기를 타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엘살바도르는 나오지 않았다. 16시간에 달하는 비행시간은 미지의 국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나를 파김치로 만들었다. 또한 도착한 엘살바도르는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열악하였다.
생경한 중남미 국가의 모습은 내가 사진 속에서만 보던 대한민국의 70년대 같았다. 거리엔 노숙자들이 있고 지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그냥 한국에서 취업 준비나 계속할걸…”
스쳐 지나가는 후회와 함께 허름한 집들과 지저분한 골목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토록 기대하던 해외 봉사는 현실의 벽 앞에서 초라해졌다.
내가 봉사하게 된 마을은 ‘산타 마리아 오스투마(Santa Maria Ostuma)’였다. 6,000명이 사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아론, 이거 먹어 봐.”
“이게 뭐야?”
“우리 아버지가 농사지은 거야.”
땀이 맺힌 이마를 훔치며 작은 손에 큼직한 파인애플을 들고 수줍게 말을 건네는 한 소년이 내 앞에 있었다.
“너 이름이 뭐야?”
“파블로.”
까무잡잡한 피부에 사슴처럼 맑은 눈을 가진 소년은 수줍게 파인애플을 건네고 도망치듯 문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무심하게 파인애플을 던져두었다. 파인애플보다 칼칼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를 한 사발 드링킹을 하고 서야 파인애플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 먹어볼까?"
소년이 준 파인애플은 시장에서 사 먹던 것과는 크기부터 당도까지 모두 달랐다. 과일을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 한 통을 순식간에 게눈 감치듯 먹어버렸다.
"이거 맛이 끝내주네."
“아론, 파인애플 맛있었어?”
“응, 파블로 덕분에 잘 먹었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한국 과자인데,
가져가서 먹어 봐.”
나는 바나나킥을 건넸고, 소년은 그것이 무어라고 품에 꼭 안은채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2년 동안 소년은 나에게 파인애플을, 나는 소년에게 바나나킥을 나누었다.
그 인연 덕분에 파블로의 아버지가 하는 농사일도 도와드리게 되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페드로.”
무심히 쟁기질을 하던 그는 조용히 이름을 말했다.
“농사일하시면서 뭐가 제일 힘드세요?”
“여긴 가난한 지역이라
농약이 부족해… 그게 제일 힘들어.”
“그럼, 제가 도와드릴게요.”
나는 코이카 봉사단 본부에 요청했다.
“소장님, 제가 활동하는 지역에선
농약이 없어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정확히 조사해서 필요 예산 산출한 뒤 수도로 올라오세요.”
마을의 실상을 전달하기 위해 찜통 같은 더위 속,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70년대식 낡은 버스를 타고 수도로 향했다. 닭들과 개들이 짖는 버스 안은 동물농장 같았다. 버스 안에서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단단해졌다.
나를 기다릴 파블로와 페드로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나요?”
“네, 농산물 생산량의 30%가
농약 부족으로 감소하고 있습니다.”
“본부에 요청하고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드릴게요.”
보고서가 잘 써졌던 걸까, 혹은 상황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된 걸까. 일주일 만에 프로젝트 승인이 떨어졌다.
“페드로, 이제 걱정 마세요.
몇 년간 쓸 수 있는 농약을 지원해 드릴게요.”
“정말 고마워, 아론.”
페드로는 나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지만, 푸석푸석한 얼굴과 깊게 파인 주름들로 인해 나의 아빠처럼 보였다. 그의 주름진 어깨와 좁아진 어깨가 삶의 무게를 대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꼭 기억하세요.
이제 생산량이 늘어나면
농약을 미리 준비해 두셔야 해요.
그래야 파인애플 농사를
지속적으로 잘 지을 수 있으니까요.”
프로젝트가 끝난 뒤 소년은 전보다 더 자주 나를 찾아왔다. 여전히 태양 같은 미소를 지으며, 한 손엔 큼직한 파인애플을 들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와 눈을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곤 했다.
“아론, 아빠가 주시는 거야.”
“응, 고마워.”
미리 준비해 두었던 바나나킥을 건네면, 그는 환하게 웃으며 가슴에 과자를 품고 문밖을 향했다.
그 낯선 땅, 외롭고 고단했던 중남미의 생활 속에서 파블로는 나의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스페인어를 못해서 속상한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에도 그는 나를 찾아와 파인애플로 위로해 주었다. 어쩌면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주고받은 건 파인애플이나 과자가 아니라, 마음일지 모른다.
여름이 다가오는 요즘 같은 날이면,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날 향해 파인애플을 건네주던 소년이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