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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도 기억나는 다정한 사람

by 아론의책

저는 고등학교 때 부러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말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녀석이었죠.


저는 그 친구의 매력에 빠져 자연스레 친해졌습니다. 나에게 없는 매력을 가진 그를 보면서 나도 그처럼 멋진 사람이 되기를 꿈꾸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혼자말을 하였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저 녀석처럼 멋지게 살고 싶다."


그 친구와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그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에게 몰입했습니다.


어찌나 재미있고 밝은지 모든 친구들이 그의 곁에 있기를 원했었죠.


그를 좋아했지만 동시에 그를 질투했습니다.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그가 부러웠고 그래서 그의 곁에 맴돌았습니다.


그와는 달리 조용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반에서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아이였죠.누군가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요.


저 역시 그 친구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요.


고등학교 2학년, 6교시 체육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체육복으로 환복을 하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죠.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고등학생들의 축구를 향한 열정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 역시 심장이 터질 정도로 쉬지 않고 운동장을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태클을 당해

운동장을 뒹굴었습니다.


발목이 전기에 감전되듯 찌릿하게 아파 손으로 부여잡았죠. 짜증과 분노가 뒤섞였던 순간에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처럼 들렸습니다.


"아론, 별로 세게 안 부딪혔잖아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


웃으며 장난 식으로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큰 실망감에 휩싸였습니다.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해서 좋아했던 내 친구, 그 녀석이 저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며 지껄이고 있었죠.


분노와 실망감이 저를 덮고 있을 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가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많이 다친 거 같은데 나에게 업혀"


반에서 가장 조용하고 공부만 하는 안경잡이 친구가 저를 업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양호실에 데려갔죠.


"야, 진짜 큰일 날뻔했다. 너네 운동할 때 조심 좀 해 제발~!"


퉁퉁 부은 발목을 심각하게 바라보며 양호선생님은 응급조치를 해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안경잡이 친구는 저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재미있고 노래도 잘하는 친구를 좋아했습니다. 그게 인생의 전부라고 느껴질 만큼 소중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다정함이라는 사실을 다치고 나서 배웠습니다. 20년 전의 이야기지만 축구 경기를 볼 때면 여전히 고등학교 때 안경잡이 친구가 생각납니다.


다정함은 말이 아니라 태도(행동)를 통해서 드러난 다는 것을 그 친구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를 통해 저를 바라봅니다.

나는 오늘 내가 스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일까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여행하는 지구별에서 가장 필요한 지능은 다정함이 아닐까요?


상대를 안심시키고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다정한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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