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떨어져 나간 소인배를 아시오?

by 송아론
허리가 떨어져 나간 소인배를 아시오?




허리가 떨어져 나간 소인배를 아시오? 나는 기쁘오. 이럴 때까지 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게 기쁘오.


어제저녁 나는 허리가 아작이 났소. 지금까지 버텨준 것이 되레 고마울 뿐이오. 상체만 남은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오. 입을 쉴 없이 놀리지 않아도 되고, 그 괴물 같은 고객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어 감사할 뿐이오. 이러던 중에도 상사는 계속 전화를 하고 있으니 내 마음을 모르는가 보오. 전화를 받으면 그는 큰소리를 칠 것이오. 허리가 잘려 나간 것이 무슨 대수냐. 당장 영업을 뛰어라. 고래고래 침을 튀길 것이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소. 단칸방 고시원에서 편히 쉬게 놔두어 두시오. 지금까지 달려왔잖소. 그 결과가 이거라면 나는 고이 눈을 감을 것이오.


허리는 댕강 잘린 채로 집을 나갔다오. 나는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소. 워낙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소. 생각해 보시오. 잘린 허리가 제 스스로 걷다니!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내라도 놀라 나자빠질 것이오. 물론 나는 상체만 남아 자빠질 수 없었지만 말이요. 허리가 어디로 갔는진 내겐 묻지 마시오. 나도 그것을 알고 싶으니 말이오. 단지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만 알아주시오. 물론 찾아줄 사람도 없지만 말이요. 그간 생각해보면 참으로도 힘든 여정을 살아온 것 같소. 고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살다 학생이 되어 비행을 저지르고 성인이 되어 수감을 하고 두부를 먹고, 마음을 비우고, 고시원에 갇혀 살고 있소. 이 얼마나 방탄하고 한스러운 삶이오. 반려자는커녕 여기는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환경조차 되질 않소. 이러던 중에도 연예인은 유기견을 키우자고 홍보를 하고 있다니. 어디 한번 나를 키워 주시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오.


나는 숨이 턱 막히는 와중에도 반듯이 해야 할 말들이 있소. 그것은 바로 사랑이요. 내 처지에 아무것도 못하고 죽는 불구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산이요. 나도 분명 사랑을 했었던 적이 있소. 여자는 진짜 내 처지를 알고 떠났지만, 그녀는 처녀였소. 그렇다고 내가 그녀의 육신을 더럽혔다고는 생각하진 말아주시오.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했소. 남녀가 만나는데 육체적인 사랑, 그 무엇이 더 필요하겠소. 그래서 나는 조금은 파렴치한 사랑을 한 것 같기도 하오. 그녀는 나를 원망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원망하지 않소. 나는 이제 상체만 남은 자고 곧 모든 언어가 소멸할 텐데 그 누구를 원망하겠소. 이러던 와중에도 허리가 궁금하오. 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자마자 불같이 뛰어나간 허리가 궁금하오. 마치 하나의 생명이 팔딱거린 것만 같았소. 무슨 꿈이 더 남아있단 말이오? 아직도 달려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도 신기하오. 생각해보면 흥청망청이었소. 오로지 일만 했던 것 같소. 그렇다고 비관을 하진 않았다오. 이따금씩 물질이 나를 위로해줬소. 죽니 사니 마니 해도 머니가 최고였소. 당신도 그렇지 않소?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서 돈이라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축복이오.


카프카는 일만 하다 바퀴벌레로 변하고 말았다오. 다행이오. 나는 일만 하지 않아 그 흉측한 갑충류로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중산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이따금씩 돈을 모았소. 적금도 하고 보험도 들고 펀드도 투자했소. 얼마나 오르고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 전 재산이오. 회사에 복종을 하면서 저금한 내 자존심이오. 생각해보면 나는 참으로 상사에게 복종을 했던 것 같소. 사회는 나이순이 아니잖소. 복종을 하는 자가 귀여움을 받는 것이오. 아주 쉽소. 고개를 숙이면 되는 것이오. 그것이 어렵소? 그렇다면 일을 하지 마시오. 노동의 대가는 물질이 아니라는 걸 당신은 알 필요가 있소. 우리가 보상받는 것은 근본적으로 귀여움이란 말이오. 그래서 카프카도 몸통에 사과가 박힌 것이 아니겠소. 일을 하지 않는 카프카는 절대 귀엽지가 않았소. 적어도 가족에게는 그랬단 말이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오. 당신은 바퀴벌레가 아니잖소.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사라지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오. 나는 여기서 끝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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