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된 시간이 되자 부부가 상담소를 방문했다. 두 사람 다 처음보다는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어머니의 인사에 남편은 짧게 ‘네’라고 대답했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부부가 별다른 말이 없는 걸 보니, 첫 상담 이후 다른 갈등이 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 갈등이 생겼을 경우, 자리에 앉자마자 이 때다 하고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었다.
“지난주에 말했던 걸 해보도록 할게요.”
어머니는 바구니가 그려져 있는 종이 두 장을 부부에게 건넸다.
“바구니 보이시죠? 여기에 두 분이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담아보는 거예요. 남편은 지금까지 결혼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무엇을 줬고, 아내도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에게 무엇을 줬는지, 단어로 써보세요. 그리고 내가 긍정적인 걸 줬다고 하면 노란색 색연필로 칠하고, 부정적인 걸 줬으면 검은색으로 칠하는 거예요. 아셨죠?”
부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부부에게 펜과 색연필을 나눴다. 부부는 내가 그동안 상대방에게 무엇을 줬는지 고민했다. 이내 단어를 적으며 노란색과 검은색을 칠했다. 얼마간의 시간의 지나자 다 했다며 색연필을 놓았다. 부부가 바구니에 담은 건 다음과 같았다.
어머니는 남편의 바구니를 보고 말했다.
“남편분부터 시작할게요. 긍정적인 것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아내에게 관심을 줬다고 하는데, 어떤 관심을 준거죠?”
“아내가 오늘 뭘 했는지, 무엇을 했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고 물어봤습니다.”
“아내분. 남편의 관심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나요?”
“아니요.”
고개를 가로젓는 아내였다.
“그게 왜...”
남편이 억울하다며 입을 열자 어머니가 막았다.
“자, 남편분. 남편분은 관심을 줬다고 했는데, 아내가 그걸 못 느꼈으면 준 게 아니에요. 억지로 강요하시면 안 돼요. 아셨죠?”
어머니는 다음으로 넘어가 ‘연락’에 대해 물었다.
“아내한테 연락을 자주 했나요?”
“네, 회사에서 점심시간이나, 퇴근할 때면 항상 연락을 했습니다. 이것도 관심이 있어서 한 거였고요.”
“아내분. 연락이 자주 오는 게 좋으셨나요?”
“아니요... 오히려 싫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받지도 않았고요...”
“이유가 뭐죠?”
“전화만 오면 청소했냐, 빨래했냐, 설거지했냐, 집에 어느 물건 있는데 그것 좀 치워라. 그러면서 자꾸 귀찮게 물어보고 간섭하는 게 싫어서요.”
“그럼 연락도 아내에게는 부정적이었던 거네요?”
“네.”
어머니는 남편을 쳐다보고 말했다.
“들으셨죠? 남편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관심을 주고 연락도 한 건데, 아내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 단어들을 엑스 표시하세요.”
남편은 황당하다는 얼굴 했다. 어쩔 수 없이 ‘관심’과 ‘연락’에 엑스 표시를 했다. 그리고 ‘정리정돈’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집안일을 돕는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정리정돈을 했지만, 아내는 항상 못마땅했다. 자기가 이미 한 걸 다시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경제’만큼은 인정했다. 지금까지 돈에 쪼들리거나 시달린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남편이 능력이 있고 직장생활을 잘했음을 인정했다.
“이제 부정적인 걸 볼게요. 잔소리, 내 말만 하기, 화내기가 있네요? 아내에게 어떤 잔소리를 했고, 언제 내 말만 했으며 어떻게 화를 냈는지 이야기해보시겠어요?”
남편은 집안일을 하는 것에 대해 잔소리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집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내 이야기만 하고 아내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또 아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답답해 화부터 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종합적으로 진단했다.
“남편분. 아까 그러셨죠? 내 말만 하고 아내의 말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요. 그럼 지금은 어떠세요? 귀 기울이고 있는 거 같나요?”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어머니가 이어 말했다.
“남편분. 잘 들으세요? 내가 아무리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상대방이 판단할 일이지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재미있으라고 상대방을 놀렸는데, 상대방이 불쾌해하면 사과해야 하는 것처럼요.”
어머니는 남편이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자, 이제 제가 남편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볼게요. 남편분은 아까 긍정적 의도를 갖고 아내에게 관심도 주고 연락도 하고, 정리정돈을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내는 왜 싫다고 했던 걸까요?”
남편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바구니에 있는 부정적인 것들 때문에요?”
“맞아요.”
어머니가 대답했다. 남편은 이제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준 관심과 연락은 모두 부정적인 것들에 기인하고 있었다. 전화만 하면 집안일에 대해 확인하고 간섭하고, 청소나 정리정돈이 잘 안 돼 있으면 잔소리하고, 아내가 청소를 다 했다고 해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특히 집안일을 도와준다며 정리정돈을 한 것은 아내를 위한 배려가 아니었다. 아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자신의 답답함을 없애기 위한 행동이었었다.
“이제 왜 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닌지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남편은 인정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아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이번엔 아내분이 그릇에 담은걸 볼게요. 사랑, 관심 건강을 남편에게 긍정적으로 줬다고 했네요? 남편에게 사랑을 준 게 맞나요?”
아내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네... 이런 말 하기 남편에게 미안하지만 사랑해요..”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을 느꼈나요?”
어머니가 묻자 남편이 대답했다.
“...아니요.”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내가 외도를 한걸 알게 된 마당인데, 남편이 사랑을 느낄 리 만무했다.
“남편은 사랑을 못 느꼈다고 하네요. 아내분은 신체 감각이 발달해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잘 헤아리니까, 이유는 말씀 안 드려도 아시겠죠?”
아내는 그렇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라고 적었지만, 적고 보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걸 느꼈다.
“다음은 관심과 건강에 대해서 말씀해 보시겠어요?”
어머니가 묻자 아내가 대답했다.
“그래도.. 남편이 하는 이야기가 있으면, 관심을 갖고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남편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건강 식단을 짜서 요리를 하기도 하고, 어디 몸이 안 좋으면 제가 먼저 알아보고 병원이나 한의원에 데려가기도 했고요”
“남편, 아내가 말한 게 맞아요?”
남편은 고민을 하더니 입을 뗐다.
“관심이라는 건... 상대방에게 애정을 갖고 물어는 거잖아요. 예를 들면 먼저 말을 건다던가,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는지 물어보는 거요. 그런데 아내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게 아예 없었어요. 형식적인 질문들만 했어요. 예를 들어 오늘 회사 몇 시에 끝나는지, 밥은 먹고 들어오는지. 이런 것들뿐이라... 관심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역시나 남편은 청각(언어감각)이 발달해서 그런지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아내를 쳐다보며 입을 뗐다.
“아내분, 남편이 이야기한 것 중에 포인트가 있는데 뭔지 아시겠어요?”
아내는 청각이 떨어져 역시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각이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이처럼 길게 말하면 듣다가도 한쪽 귀로 흐르는 상황이 발생한다.
“남편이 말하길, 관심은 애정을 갖고 물어보는 거래요. 그런데 아내가 자기한테 물어본 건 아내로서가 아니라, 그냥 밥하는 사람이 물어볼 법한 질문만 했다는 말이에요. 밥 먹었는지, 밥 먹고 들어오는지, 회사 몇 시에 끝나는지. 이런 것들 말이에요.”
아내는 이해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생각해보니 어느 순간부터 남편을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관심에다 엑스 표지를 했다. 하지만 남편은 건강만큼은 인정을 했다. 아내가 건강을 끔찍이 챙겨서 건강과 관련된 건 100% 신뢰한다고 했다.
“다음은 부정적인 거 볼게요. 미움, 회피, 무기력, 외도네요? 왜 이런 게 생겼죠?”
어머니가 묻자 아내가 답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남편이 집안일을 자꾸 간섭하고 잔소리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미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남편이 말을 걸어도 회피했고요. 또 제가 취미생활도 없이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다 보니까... 그런 저를 보는 남편도 무기력한 걸 느낀 적이 있었어요.. 외도는 말할 것도 없이 잘못했고요..”
아내는 시종일관 자신감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힘 있는 목소리를 냈다..
“아내 분! 내가 잘못한 걸 알았으면, 이제 앞으로 안 그러면 되는 거예요? 그렇죠?”
“네...”
“그러면 이제 두 분 모두 다시 내 바구니를 보세요. 그리고 이제 나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더 주면 될지 고민해 보세요. 그리고 생각나는 게 있으면 단어를 적으시고 초록색으로 칠해보세요.”
부부는 다시 고민을 했다. 깨달은 게 있다면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게 무엇인지 바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부부는 상대방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적고 초록색으로 칠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
아내는 ‘다가가기’, ‘대화하기’를 썼고, 남편은 ‘사랑’을 썼다.
어머니가 아내에게 먼저 물었다.
“왜 다가가기랑 대화하기를 쓴 건가요?”
“지금까지 먼저 다가선 적이 없어서 다가가기를 적었어요. 그리고 남편이 말을 걸어도 회피만 해서 대화하기를 적었고요.”
“남편은 왜 사랑이라고 적었나요?”
“사랑을 주지 않아서 사랑이라고 적었습니다.”
아내에 비해 남편은 아직 아내가 필요한 걸을 잘 모르는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분. 아내가 가끔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다고 그랬죠? 그래서 제가 그게 무엇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죠?”
“청각이 떨어져서 그런다고 했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남편은 뭐가 떨어지는지 아세요? 신체 감각이에요. 신체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사람의 감정을 잘 헤어 린지 못한다고 했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 아내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 거 같아요. 아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실래요?”
남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내에게 더 줘야 할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가던 중, 남편이 화색을 띠며 단어를 적기 시작했다. 바로 ‘스킨십’과 ‘마음 읽어주기’였다.
“아내분. 만족스러우세요?”
“네.”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부부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 더 줘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죠? 아내는 남편에게 먼저 다가가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말동무가 돼 줘야 해요. 그리고 또 하나. 취미생활 하나는 무조건 만드세요. 집에서 무기력하게 있으면 절대 안 됩니다. 아셨죠?”
“네.”
어머니의 시선이 남편에게 옮겨졌다.
“남편도 끝가지 잘 생각하셨어요. 이제부터 너무 대화만 하려고 하지 마시고, 때론 아무 말이 안아주고, 쓰다듬어도 주면서 아내와 스킨십을 하도록 하세요. 아내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눈에 뭐가 밟힌다고 무조건 바로 말로 뱉으면 안 돼요. 말을 하기 전에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내가 어떨지 반드시 한번 생각하고 하세요. 아셨죠?”
“네, 알겠습니다.”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상담은 이걸로 마치도록 할게요. 오늘 한 거 가져가시고, 서로 갈등이 생기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바구니 보고 꼭 답을 찾도록 하세요?”
부부는 알겠다며 환하게 대답했다. 부부는 상담을 마치고 바구니 그림을 들고나갔다. 나는 이들에게 인사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Q&A 긍정적 의도란?
나는 어머니가 상담한 것을 보고 한 가지 포인트가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긍정적 의도였다. 이 긍정적 의도라는 표현은 비단 이번 부부상담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상담할 때 자주 쓰는 표현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는 이번 기회에 긍정적 의도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좀 더 세세하고 명확하게 알고 싶어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긍정적 의도라는 게 정확히 뭐야?”
“모든 사람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자기만의 긍정적 의도를 가져.”
“예를 들면?”
“청소를 하는 이유는? 깨끗한 게 좋아 서다. 예쁘게 입은 이유는?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긍정적 의도가 있다는 거야.”
나는 이 부분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 쉽게 이해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게 내가 아무리 긍정적 의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도 똑같이 긍정적으로 느낀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부부상담 사례처럼 말이지?”
“그렇지. 그리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거나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 이때도 ‘긍정적 의도’를 생각하면 그 사람의 생각을 좀 더 쉽게 파악할 수 있어. 그에 따라서 대처하는 내행 동도 달라지고.”
“음...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머니는 상담을 할 때도 내담자의 긍정적 의도를 들여다보면, 내담자가 왜 그런 행동과 말을 하는 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항상 긍정적 의도를 유념하고 상담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상담하는 것에는 스킬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대강 긍정적 의도에 대해 알고 있어서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물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벼워 보이나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이론 중 하나였다.
심리상담 사례집 <벼랑 끝, 상담>이 출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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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 증상과 상담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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