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바깥 소리

by 송아론

냉장고 안의 세계가 너무 안전해 보여 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간 건 내 의지가 아니라 그이의 의지였다. 그이는 내 다리부터 예쁘게 접은 뒤 어깨와 팔을 쿡쿡 눌러 냉장고 신선 칸에 집어넣었다. 울긋불긋한 상처와 뜨거웠던 머리가 시원했다. 나는 살짝 열린 신선 칸 사이로 빼꼼 그를 올려다봤다.

그이는 마치 엄숙한 판사의 얼굴처럼, 아무 죄가 없다는 듯 세차게 냉장고 문을 닫았다. 그 뒤로 며칠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냉장고 문이 다시 열렸을 때 고이 접힌 딸아이가 보였다. 딸은 책장 속의 동화처럼 내 위칸에 알맞게 들어갔다. 그이가 냉장고 문을 닫자마자 나는 딸에게 말했다.


미주야 엄마 목소리 들려?

엄마... 졸려...

뭐라고?

졸리다고...

미안해 미주야.


딸은 그 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유치원은 잘 갔다 왔는지, 엄마 보고 싶다며 울지 않았는지, 아빠 말은 왜 잘 안 들어서 여기에 왔는지 잔소리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주는 갓난아기처럼 자고 있을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냉장고 문이 열리길 바랐지만 그이는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 그저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 소리와 식기를 세척하는 소리, 그리고 이따금 술을 먹으며 혼자 푸념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당신도, 숨기느라 힘들겠지. 하지만 나와 미주는 잊지 말아 줘.


얼마간 시간이 또 흘렀을까? 여전히 프라이팬에 고기를 굽는 소리와 식기를 세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빨래를 하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술을 먹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티브이를 보며 껄껄 거리는 웃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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