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죽어드립니다

by 송아론

진부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그것을 실행에 옮기느냐 마느냐로 갈릴 뿐이야. 그런데, 만약 정말로 죽고 싶다고 한순간 바로 죽어진다면 너는 어떻겠니? 난 참 재미있을 거 같은데. 특히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을 수만 있다면 더더욱이!

충동적으로 내뱉는 말. 죽고 싶다. 죽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내가 대신 죽어 줄 테니.


이야기에 앞서 잠시 나를 소개하자면, 나는 이미 마흔일곱 번이나 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죽어준 사람이야. 첫 번째는 태아였는데, 사지가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은 지금까지 내가 죽어본 것 중에서 당연 으뜸이었지. 크거나 작거나 팔다리가 찢기는 고통은 소름 끼치도록 공포스럽거든.


두 번째는 여고생이었는데, 나는 휴대폰으로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어.

[대신 죽어 줄까?]

그녀는 또 누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거로 생각했던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군. 그래서 다시 말했지.

[진심이라고.]

그러자 여고생은 재미있던지 이네 ‘네^^’라고 귀엽게 대답했어.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전속으로 달려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지. 그녀가 공부하는 교실 창밖으로.

콰앙! 하는 소리에 교실에 있던 학생들이 모두 창문을 열고 나를 내려다보는데, 나는 여고생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오늘도 대성공이라는 것을 직감했지.

“이봐, 넌 이제 죽었다고.”

나는 땅바닥에 짜부가 된 채로 여고생에게 말했어. 그녀는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더군.


삶이라는 것은 늘 내가 생각하던 것과 맞지 않기 때문에 죽어버리는 게 속편 할 때가 아주 많지. 태어난 순간 부모에게 버림을 받는다던가, 성폭행을 당해 인생을 망쳐버린다던가,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살아간다던가, 사업이 망한다던가, 빚더미를 안는다던가, 배신을 당하다던가, 기타 하등 할 것들 말이야. 자신의 이상과 맞지 않으면 가장 먼저 하는 생각. 죽어버릴까?


좋아. 그럼 내가 너희를 위해 대신 죽어 줄게. 대신 너희는 그 대가로 나에게 무엇을 줄래?

새로운 삶? 희망? 용기? 이런 것 따위는 내겐 어울리지 않으니까 됐고, 좀 더 현실적인 걸 생각해보라고. 죽음 따위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니까.


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서 일곱 번째 때는 자살동호회에 들어갔어. 사람들은 수면제와 농약, 번개탄을 들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죽을 방법을 결정한 상태였지. 그리고 여관방에 둥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데 나는 지루해 죽겠다며 외쳤어.

“스톱 스톱! 지루해 죽겠어! 뒤지려면 그냥 빨리 뒤지지 뭔 말들이 이렇게 많아? 됐으니까 내가 대신 죽어줄게!”

나는 바로 도구를 꺼내 천장에 목을 매달았어. 죽음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몸소 실천해 주고 싶었거든. 공중을 아등바등 거리며 호흡이 끊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분. 난 그 1분 동안 그들이 어떻게 하나 두 눈으로 면밀히 관찰했어. 그리고 그들이 공통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 어떻게 알았냐고? 내 생에 처음으로 기적적으로 살았거든. 그들이 구해줘서.


죽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맹랑하기 그지없어. 맹렬하게 죽겠다고 외치더라도 막상 순간에 닥치면 무의식적으로 일말의 삶을 생각해두지.


자, 그렇다면 이제 모두에게 주었던 난제를 너에게 줄게. 지금까지 분명 넌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이제 내가 대신 죽어 줄게. 넌 대신 나에게 무엇을 주겠니? 난 지금이라도 당장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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