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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2화를 보셔야 이해하기 좋습니다.
*위 내용은 상담 사례집 <벼랑 끝, 상담>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사례3] 움츠리지 마! 네가 잘못한 건 없어
딸은 매주 심리치료를 받으며 좋아졌다. 그 결과 나와 인사를 할 때 미소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단 걸 느꼈다.
엄마와도 사이가 좋아졌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엄마에게 늘 명령조로 말하고 하인 부리듯 했는데, 인지 치료를 통해 그간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딸은 집에 들어오면 항상 공허함을 느꼈는데, 강아지를 분양받으면서 정서적으로도 안정됐다. 딸은 상담소에 올 때마다 원장님에게 강아지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마다 나도 껴서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항상 자제했다. 딸에게 있는 남성 혐오가 완전히 없어진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원장님이 딸과 강아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느꼈다. 사실 원장님은 개 알레르기가 있어서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원장님이 딸의 기분을 맞춰준 것은 라포르(Rapport) 형성을 위해서였다.
라포르란, 상호 간에 친밀감, 유대감, 공감대를 형성하는 걸 말한다. 내담자는 상처받은 사람이고 마음의 문을 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상담사는 이를 잘 맞춰줘야 한다. 내담자의 감정이 왼쪽으로 치우치면 왼쪽으로 따라가 줘야 하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면 오른쪽으로 따라가 줘야 한다는 말이다.
원장님이 라포르 형성을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바로 조울증을 앓는 내담자라고 했다. 조울증은 내담자가 한순간에 우울했다가 기분이 좋아지기도 해서 그의 감정을 맞춰주며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울한데 눈치 없이 농담을 던진다든가, 내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웃는 얼굴로 상담을 한다든가, 내담자가 기분이 좋아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이를 받아주지 못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원장님은 내담자와 라포르가 형성되면, 아래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내담자에게는 말을 놓곤 했다. 그래야 벽이 없어지면서 더 편한 사이가 되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은 딸의 이름을 편하게 불렀고, 내담자도 원장님이라기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렇게 한동안 상담인지 수다인지 모를 이야기를 나눈 후, 원장님이 딸에게 물었다.
“OO가 기분이 좋아 보여서 선생님도 좋네. 그래, 요새 샤워는 어떻게 하니?”
그 이야기를 꺼내자 금세 얼굴이 어두워지는 딸이었다.
“아직 똑같아요.”
“샤워하면 2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지?”
“네,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이요.”
“에휴... 많이 힘들겠네...”
“네..”
딸은 샤워가 끝나도 자기 몸이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다시 씻기를 반복했다. 특히 아빠가 만졌다고 생각되는 신체 부위는 타월로 피부가 빨개질 때까지 벅벅 닦았다. 씻어도 항상 불순물이 몸에 남아 있는 것 같고 불쾌한 느낌이 났다. 딸은 그래서 샤워를 하고 나면 녹초가 돼서 그대로 잠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날 때마다 몸에 멍이 든 곳이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성추행을 당한 흔적이 있는지 찾는 것이었다.
원장님이 말했다.
“OO가 그렇게 오래 씻는 이유는 강박증이 심해서 그래.”
“강박증이요?”
“응. 내 몸이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복적으로 씻는 거잖아? 그렇게 샤워를 해야 그나마 마음이 편안한 거고?”
“맞아요...”
“원래 강박증이라는 게 그래. 불안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거야. 그래서 같은 행동을 반복해 불안한 마음을 없애는 거지. 몸이 힘들더라도 그렇게 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딸은 공감 간다는 얼굴로 수긍했다. 원장님이 이어 말했다.
“일어날 때마다 몸에 멍든 곳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마찬가지야. 멍든 곳이 없는 걸 확인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그러는 거야.”
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 맞는 말이었고, 더는 이렇게 살기 싫었다.
“강박증도 치료가 되는 건가요?”
“물론이지. 다 치료할 수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원장님은 딸을 위로했다.
성추행, 성폭행 사례는 불행하게도 흔한 상담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성범죄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일전에는 한 중년 여성이 강박증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상담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전업주부였는데 온종일 청소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매일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기로 돌렸고 걸레질을 했다. 걸레질할 때도 손으로 해야 만족이 돼 매일 무릎을 꿇고 온 집안을 닦았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20년간 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왔다. 무릎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가족은 그런 아내와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너무나 힘들었다. 청소를 그만하고 싶은데 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가득해 그만둘 수 없었다.
원장님은 환경프로파일 검사를 진행했다. 필시 어린 시절에 환경에 문제가 있어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 환경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친정과 시댁에서도 갈등이 전혀 없었고, 가족도 화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원장님은 결국 명상최면을 통해 중년 여성의 무의식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장님은 중년 여성을 명상최면실에 눕힌 뒤 트랜스 상태로 유도했다. 그녀가 큰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는지 유치원 시절부터 하나하나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던 중 잊고 있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삼촌이 자기한테 유사 성행위를 시킨 일이었다. 삼촌은 자기 물건을 중년 여성에게 만지게 하고 빨라고 시켰다.
중년 여성은 당시 그게 뭔지 몰라 시키는 대로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도 오래됐고 가족에게 말하기도 힘들어 회피하고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중년 여성은 정말로 잊고 살았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 갑자기 이러한 증상이 생긴 것일까? 나중에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증상이라는 게 꼭, 바로 나타나는 게 아냐.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 10년 후에도 나타날 수도 있어.”
“그러면 엄마, 성범죄에 당한 사람들은 다 강박증에 걸리는 거야?”
“사람마다 다 달라.”
“어떻게?”
“어떤 사람은 성범죄를 당해도 일상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는 대신 신념이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어.”
“신념이나 정체성..?”
“내 몸은 이미 더럽혀졌다면서 사창가에서 일하거나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거야.”
“또 다른 사람들은?”
“자꾸 벽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하거나,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를 듣기도 해.”
“환청이 들리는 거구나..”
“맞아. 살이 닿는 걸 그토록 꺼려서 결혼 후에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어.”
원장님은 이처럼 사람마다 증상이 각기 다르다고 했다. 또 강박증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했다. 딸처럼 반복적으로 씻거나 몸에 멍든 곳이 있나 확인하는 가하면, 불안한 마음에 현관문과 창문이 잠겨있나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예도 있다고 했다. 나는 같은 상처라도 사람마다 심리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걸 많이 봐서 납득이 갔다. 그러던 중, 번뜩 다른 질문이 생각났다. 남자가 성추행을 당하면 어떤 증상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똑같아. 여자한테 성추행을 당하면 여성을 혐오하고 다 속물이라고 생각해.”
“남자한테 성추행을 당하면?”
“남자로서의 존재감을 완전히 상실해. 나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남자라는 부정적인 신념이 박혀. 그래서 남자를 피하면서 여자와도 잘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원장님은 남자는 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했다. 반대로 여자가 여자를 성추행해 상담소를 찾은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게 성폭행이라고 했다. 트라우마가 깊게 박혀 대인관계는 물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파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장님은 내가 누군가에게 살인을 당할 뻔한 것보다, 성범죄가 더 큰 충격을 준다고 말했다.
원장님은 딸을 위로한 뒤 그녀를 명상최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침대에 눕힌 뒤, 명상최면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또 다른 내가’ 명상최면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 온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어... 다시 한번 깊게 들여 마시고... 천천히 내뱉어...”
딸은 들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날숨을 뱉었다.
“자, 이제 편안한 상태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이미지를 떠올리는 거야. OO는 지금 샤워실에서 샤워하고 있어. 샤워기를 켜고 물이 내 몸 위로 쏟아지면서 거품을 내고 깨끗이 씻고 있는 모습을 떠올려봐.”
딸은 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 그 안에 있는 나를 천천히 관찰해. 나는 무슨 얼굴인지. 어떻게 씻고 있으며 들리는 소리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감정인지 천천히 관찰하도록 해봐.”
딸은 원장님의 말에 따라 샤워를 하는 내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다.
“지금 샤워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때?”
원장님이 묻자 딸이 대답했다.
“인상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다 씻고 나가면 되는데... 또 씻고 있어요..”
“그렇구나. 샤워는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어?”
“..때 타월로 온몸을 닦고 있어요.”
“거기서 들리는 소리가 있니?”
“....벅벅 때 타월 소리만 들려요... 그리고 조금씩 신음을 흘려요..”
딸은 명상최면을 하면서 자기가 샤워를 할 때 아파서 신음을 흘린다는 걸 처음 알았다.
“좋아. OO는 지금 다 씻었는데도, 나가지 않고 계속 때 타월로 온몸을 닦고 있네?”
“....네.”
“그럼 이제 그 안에 있는 내 감정이 어떤지 느껴 보도록 해봐. 그 안에 있는 내가 어떻게 느껴져?”
“예민해 보여요. 그리고 힘들어하는 거 같아요... 샤워실에서 나가고 싶은데 불안해서 못 나가고 있어요...”
딸은 이처럼 샤워실에서 일찌감치 나가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그렇구나. OO는 오래전부터 샤워실에서 나가고 싶었는데 불안해서 못 나가고 있었구나. 그래서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힘들었어. 맞니?”
“네...”
딸은 샤워실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을 보곤 목이 메었다. 원장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딸을 다독였다.
“괜찮아.. 이제 그 안에 ‘또 다른 내가’ 들어갈 거야. 또 다른 나는 매우 현명하며 지혜롭고 용기가 있는 나야.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아무런 상처도 없어. 이제 선생님이 하나, 둘, 셋, 하면 또 다른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또 다른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니?”
“네.”
“이제 또 다른 내가, ‘상처받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 그리고 상처받은 나에게 말해주는 거야.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나는 너를 이해해. 네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 불안해하지 마. 괜찮아, 괜찮아.”
딸은 원장님의 말에 따라 ‘상처받은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네 잘못이 아니라며 상처받은 나를 위로했다. 원장님이 소리 내 말해보라고 하자 딸이 울먹이며 입을 뗐다.
“괜찮아... 너는 잘못된 게 아니야.... 오히려 나를 보호해 주려고 했어. 괜찮아...”
“그래. 그러니까 움츠릴 필요 없어. 걱정하지 마. 괜찮아.. 괜찮아...”
원장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른 내가’ ‘상처받은 나를’ 계속 위로할 수 있게 유도했다. 딸은 눈물을 흘리며 ‘상처받은 나’를 안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원장님이 물었다.
“상처받은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말하는 게 있니?”
“...네.”
“뭐라고 하니?”
“무서웠다고 하고 있어요... 자기도 이러고 싶지 않았대요...”
“그래, 네가 한 행동은 전혀 나쁜 게 아니라고 등을 토닥여줘. 그리고 ‘또 다른 내가’ 말해줘. 이제 나와 함께 샤워실 문을 열고 나갈 거라고. ‘또 다른 나는’ 매우 현명하고, 강하며 용기가 충만한 나야. 그러니까 ‘상처받은 나’에게 말해줘. 여기서 나가면 두려움도 없어질 거고, 불안한 마음도 사라질 거고. 행복으로 가득 찬 세상이 열릴 거라고 말해줘. 아주 파워풀하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원장님은 딸이 상처받은 나를 설득할 시간을 주었다. 잠시 후, 딸에게 물었다.
“상처받은 나에게 나가자고 말했어?”
“네...”
“상처받은 내가 뭐라고 대답해?”
“나가겠대요....”
“좋아, 그럼 ‘또 다른 내가’, ‘상처받은 나’의 손을 잡아. 그리고 하나, 둘, 셋. 하면 샤워실 문을 열고 그 안에서 나가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또 다른 나와, 상처받은 내가 샤워실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나갔나요?”
“네.”
“잘했어. 그럼 이제 샤워실만 남은 그 장면을 액자에 넣어. 그리고 내 앞으로 가까이 가져와. 가져왔니?”
“네.”
“이제 내 양손엔 아주 커다란 폭탄을 들려 있어. 하나, 둘, 셋, 하면 액자에 폭탄을 던져서 사라지게 하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폭탄을 던졌습니다! 오우- 액자가 폭탄에 터져 사라졌네요. 사라졌나요?”
“네.”
“좋습니다. 이제 천천히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다시 한번 호흡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눈을 뜨세요.”
딸은 명상최면을 마쳤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한결 편안해졌다. 처음으로 힘들어하는 나의 내면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초라해 보이기만 했던 내 모습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위 심리치료의 이름은 <나를 위로하기>입니다.
강박증으로 인해 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나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이해해주는 것이죠.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나를, 내가 이해를 해줌으로서 불안감을 해방시켜 줍니다.
<어린왕자와 함께하는 심리치료 여행>에서는 이처럼 아무도 이해못하는 나를 위로해주는 심리치료가 있습니다.
나는 너무나 힘든데, 아무도 내 아픔을 알아주지 않을때 <나를 위로하기>를 통해 위로를 받으세요.
당신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텀블벅에서 <어린왕자와 함께하는 심리치료 여행>을 펀딩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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