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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학관

[짧은 소설] 생매장

by 송아론

오후 7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땅거미가 지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정확하게 왔네.』

『말했잖아. 오후 7시까지 오겠다고.』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친 뒤,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들어 그에게 고정시켰다. 일주일 사이에 새치가 더 늘어나 있었다.

『염색 좀 하지.』

이윽고 그가 환복을 한 뒤 메세지를 썼다.

『그러게. 한다는 게 자꾸 까먹네.』

나는 카메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살아있다니.


나는 3년 전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 1년 전에는 의사에게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의식을 할 수 있는 건, 남편이 내가 사망하기 전 뇌에 있는 모든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겼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는 내가 죽었는지도 몰랐다. 눈을 감은 채로 한숨 자고 일어나고 보니,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고 귀에서 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식물인간이라고 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줄 아는데 사실 오해다. 뇌사하지 않는 이상은 모든 소리를 듣는다. 단지 반응을 하지 못한 뿐.


하지만 그날은 내게 있어 축복 같은 날이었다. 눈꺼풀이 떠지더니 남편이 내 눈앞에 있었다.

『여보... 나 깨어난 거야?』

『그래, 4년 만이네.』

남편이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곧이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선을 아래로 하자 내 몸이 보이지 않았다. 침대 시트에 누워 있는 게 아니라, 책상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말했잖아. 당신 어떻게 해서든 살려보겠다고.』

나는 망치를 얻어 맞은 기분을 느꼈다. 그가 병원에 올 때마다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있잖아. 당신 뇌에 있는 정보를 인공지능에 옮길까 하는데, 당신은 어때? 그렇게 하면 적어도 교감은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말도 안 된다고, 그건 윤리를 배반하는 일이라고 속으로 외쳤다. 게다가 신을 믿는 우리가 그런 짓을 하는 건 옳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내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뭐 하고 있었어?』

그가 맥주 캔을 따며 물었다.

『그냥 인터넷 서핑.』

『혼자 있으면 지루하지? 내일 연차 썼는데, 우리 어디 놀러 갈까?』

나는 황당하다며 말했다.

『자기는 가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잊는 거 같아.』

『아니 내가 당신을 데리고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

『설마 차에다 컴퓨터를 실으려고?』

『아니,』

그가 태블릿을 들고 이어 말했다..

『이 태블릿에 당신 데이터를 복사해서 여행을 하려고. 그리고 다시 집에 와서 여행 데이터를 당신에게 덮어 씌우기 하면 여행을 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

『왜 그래?』

나는 한참이나 멍하니 있다가 메세지를 썼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하면, 내가 여행을 갔다 온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응. 이 태블릿에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이것도 당신인 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 만약 내가 싫어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를 버리고 그 태블릿이랑 대화할 수도 있는 거네? 그것 역시도 나니까.』

『아냐. 그럴 일은 절대 없어. 어디까지나 태블릿은 세컨이니까. 다른 백업들도 마찬가지고.』

『...다른 백업?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건 또 처음듣는 말이었다. 남편이 말하기를 주저하더니 입을 뗐다.

『혹시 모르니까. 당신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복구시켜야 하니까. 다른 의도는 없어.』

나는 가만히 남편을 응시하다 말했다.

『당신은 정말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해?』

『그럼 아냐?』

『나는 가끔 내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왜냐면 난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또 그런 소리 한다. 프로그램만 내가 만든 거지. 당신 뇌에 있는 정보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이건 당신 그 자체야. 내 아내라고.』

또 시작이었다. 우리는 매일 이런 걸로 입씨름을 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래의 내가 아닌 거 같다고 하면 남편은 당신 본연의 모습이 맞다. 의심하지 마라.라고 했다. 나도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내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말하니까. 다만 데카르트가 살아 있다면 묻고 싶다.


'정말로 생각을 하면 존재하는 게 맞나요?'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와 '나는 존재한다'는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진리 인가? 나는 남편에 의해서 억지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복사 좀 할게.』

남편이 USB를 꽂아 내 데이터를 태블릿에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남편을 바라봤다. 이렇듯 나는 처음부터 눈을 뜬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고, 내 인생을 다른 곳에 옮기는 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남편이 하고 싶다면 나는 그저 보고만 있는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이후 어디로 여행을 갈 생각인지, 검색을 하고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며 어디든 좋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게 몇 년 만의 여행이냐며 들떠 있었다. 맥주를 세 캔이나 마시더니 그대로 엎드려 곯아떨어졌다.

'가엽기도 해라.'

나는 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그는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깜빡 잠들었다며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침대 위에 누었다. 역시나 오늘도 컴퓨터를 끄지 않고 잠에 든 그였다. 자기가 자는 걸 보고 있었으면 좋겠다나. 컴퓨터로 의식이 옮겨간 뒤로부터 나는 이렇게 그가 자는 모습을 매일 보곤 했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남편이 가엽고 불쌍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리적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니 진짜로 가여운 건 바로 나었다. 끊임없이 복제 되는 인생이. 그 중에서 진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생이. 어쩌면 지금의 나 또잔 나의 복제품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는 결정 했다며 메모장을 열었다. 남편이 일어나면 볼 수 있도록 했다.


【여보, 내일 재밌게 놀다 와. 나는 조금만 쉴게.】


나는 그 말과 함께 X드라이브로 들어가 남편이 만든 프로그램을 삭제시켰다. 하나둘 파일이 삭제가 되는 걸 보면, 치매에 걸리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것도 극단적 선택에 들어가는 걸까? 나는 의식이 소멸되며 컴퓨터도 끄지 못한 채 생매장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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