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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Sep 19. 2020

[사례5] ‘강박증’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딸 1화



[사례5] ‘강박증’ 때문에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딸



한 중년여성이 30대 딸을 데리고 상담소를 방문했다. 이유는 딸이 집안에 쓰레기를 모아 두고 버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비닐, 휴지, 플라스틱, 페트병, 먹다 남은 음식물, 자기가 사용한 모든 용품을 방에 쌓아두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뒤처리를 한 휴지도 비닐에 묶어 방에 가지고 있었다. 방에서는 악취가 풍겼고, 엄마가 치우라고 하면 딸은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또 자기가 먹는 밥그릇과 수저도 닦지 못하게 하고, 샤워도 오랜 시간 동안 하지 않았다. 딸이 이렇게 지낸 지가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었다.

원장님은 내담자(딸)에게 상담실로 들어오라고 한 뒤 각종 검사지를 진행했다. 그중에서 환경프로파일 검사지를 먼저 판독했다. 그 결과 내담자는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엄마만 보면 자꾸 다른 남자들이랑 뒤엉켜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죠?” 

원장님이 묻자 내담자가 대답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어요….”

원장님은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음을 직감했다. 환경프로파일 검사에서 엄마를 신뢰할 수 없다고 나왔고, 아빠는 무시하는 존재였다. 원장님은 내담자에게 왜 엄마를 신뢰할 수 없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유치원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내담자가 집에 있을 때였다. 엄마가 갑자기 벌거벗은 채로 오더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딸은 느낌이 이상했지만, 엄마의 나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엄마는 이상한 포즈를 잡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없을 때마다 나체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또 엄마는 자신을 데리고 밖에 나갈 때마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만났다. 그때마다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엄마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광경을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무려 20년을 넘게 지켜봐 왔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엄마가 어느 순간부터 딸에게 남자랑 성관계를 한 이야기를 했다. 이 남자와는 무얼 했느니, 남자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느니, 입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거기다 엄마가 만나는 남자는 또 어떤가? 생판 양아치 같은 놈들뿐이었다. 엄마가 유부녀인 걸 알면서도 접근하는 남자. 유부남이면서 엄마와 관계를 갖는 남자. 성관계만 하기 위해 엄마를 만나는 남자 등등, 엄마는 수시로 남자를 갈아치우며 새로 만나는 남자를 소개했다.


딸은 그때부터 도덕적 강박에 시달렸다. 엄마가 하는 일이 잘못된 걸 알면서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가 떠나갈까 두려운 마음. 집에서는 현모양처처럼 구는 엄마의 이중성.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일만 하는 아빠. 내담자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다 결국 혼란을 일으켰다. 엄마만 보면 다른 남자랑 성관계를 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자기도 똑같이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그녀가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어느새 도덕적 강박에 걸려 자기가 쓰레기를 버리면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내담자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했다. 


“밥그릇을 씻지 못하는 이유도 사람들이 피해를 볼까 봐 그런 거예요?” 

“네…. 밥그릇을 씻으면 더러움이 하수구나 다른 데로 흘러가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게 될 테고요.”

“그렇군요….”

원장님은 내담자의 ‘긍정적 의도’를 파악했다. 그러니까 그녀가 쓰레기나 밥그릇을 씻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으로 인해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볼까봐여서였다.

“검사지를 보니까 아버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네요?” 

“네, 병신 중에 상병신이에요.”

원장님은 흠칫 놀랐다. 내담자가 그런 거친 언어를 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원장님이 묻자 내담자가 대답했다.

“엄마가 그렇게 바람을 피우는 데도 모르니까요. 아빠는 그냥 일밖에 몰라요.”

알고 보니 아빠는 유명한 기업의 고위 간부였다. 직장에서는 신망도 두텁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정을 돌볼 줄 몰랐고, 오로지 일과 미션에만 치중된 사람이었다.

“그렇군요. 힘들었겠어요. 세상에 무슨 이런 엄마가 다 있지. 아내가 이렇게 할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는 뭐고. 휴….”


원장님은 한숨을 쉰 뒤 내담자에게 왜 도덕적 강박이 생겼는지를 설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보며 도덕심을 지속적으로 훼손당해 그런 것이라고 했다. 내담자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만 보면 남자랑 뒤섞여있는 이미지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게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과 연결돼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였다.


“이제 밖에 있는 엄마를 부를게요. 하은 씨가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 엄마도 알아야 하잖아요. 그쵸?”

“네.”

원장님은 대기실에 있는 내담자 엄마를 불렀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바로 입을 뗐다.

“어머님, 딸 이야기 들었는데, 너무 하셨네요.” 

“…?”

내담자 엄마는 무슨 소리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님, 딸이 유치원 다닐 때 발가벗고 사진 찍으라고 시키셨어요?” 

“네?”

“딸한테 발가벗은 사진 찍으라고 해서 외간 남자들한테 보내셨냐고요.” 

당황해하는 엄마였다.

“딸이 그러는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바람피웠다면서요. 맞아요?” 

엄마가 대답하지 않자 재차 물었다. 

“대답해보세요.”

“……”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설마 여기서 바람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원장님의 비수가 날아들었다.

“이거 진짜 생각이 없는 엄마네. 바람피운 일을 딸에게 오픈하고, 심지어 남자랑 성관계한 이야기까지 하고, 이게 정상적인 엄마예요? 그러면서 딸이 왜 이런 증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고 상담소에 데려와요? 대체 왜 그러셨어요?”

내담자 엄마는 부끄러움에 죄송하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원장님의 질책은 끝나지 않았다.

“딸을 바람피우는 수단으로 이용한 거잖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부끄러워서 말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긴 말 할 필요 없고, 다음 주에 당장 아버지 데리고 오세요. 아버지 데리고 와서 자초지종 설명하고, 딸 분가부터 시켜야 해요.” 

엄마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네? 우리 애랑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구요?”

“딸이 엄마만 보면 다른 남자랑 뒤엉켜 있는 장면부터 떠오른다잖아요. 엄마가 딸한테 부정적 영향만 끼치는데, 어떻게 같이 살아요. 떨어져 있어야죠.”

딸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원장님이 딸을 보고 말했다.

“하은 씨.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엄마랑 떨어지는 게 낫겠어요, 안 낫겠어요?” 

내담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네, 그렇게 할게요.”

내담자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딸과 떨어져서 사냐는 뜻이었다.

“지금까지 딸한테 온갖 정신적 학대를 해놓고, 분가한다니까 어떻게 떨어져서 사냐니요. 남편이 알면 이혼당할까 봐 그러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내담자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딸에게 그렇게 하면서도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단호했다. 치료가 다 끝나고 내담자가 엄마를 용서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같이 살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원장님은 이야기를 마치고 내담자 엄마를 상담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내담자와 단둘이 이야기했다.

“제가 하은 씨를 엄마랑 떨어트려 놓는 건 엄마한테 큰코다쳐보라는 뜻이 아녜요. 엄마만 보면 자꾸 안 좋은 생각이 든다면서요. 그래서 일단 떨어져 있어야 해요. 그리고 다음 주에 아빠 오셔서 이 사실을 알면, 이혼 얘기가 나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오픈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아빠를 속이고 치료를 진행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내담자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다음 주에 오실 때는 무조건 가족이랑 분가할 생각으로 상담소에 오세요. 그리고 심리치료 받으면 지금처럼 괴로운 생각들이 사라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요. 다 나아질 수 있어요.”

“네 알겠습니다.”

원장님은 할 수 있다며 깊은 눈빛으로 내담자를 바라보았다. 



*이후 이야기는 도서 <벼랑 끝, 상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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