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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학관

병신

by 송아론


고장 나면 고쳐 준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늘 녹슬어 움직이지 못한 나를 봐줄 거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삐걱거리는 대로 그게 좋다고 하는 네 말이 좋았다.


처음으로 호두까기 인형이 되어보는 꿈도 꾸었고, 그렇게 네 옆에 사는 것도, 잠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상상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까지였다.


주변에서는 네가 날 배신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다. 너는 그저 잠시 쉼이 필요해 앉아 있었던 거고, 하필 그 자리에 고장 난 내가 있었을 뿐이다. 너는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테고 고맙게도 나를 들여다 봐주었다.


네가 안개처럼 사라져도 이해해.

이제는 해가 뜨는 시각이 되었으니까.

이곳에 너무 오래 있는 것도 좋지 않아.

곧 있으면 잠길 테니까.


네가 나를 이곳저곳 살펴보며 마지막으로 쉬었던 한숨, 그 한숨이 떠오른다. 그 온기가 또 올 거라고 생각한 내가 멍청했던 거다. 그러니까 병신처럼 이러고 있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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