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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부터 보셔야 합니다. ;)
『나는 가끔, 내가 아닌 것 같아. 왜냐면 난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또 그런 소리 한다. 이건 당신이야. 당신 뇌의 정보를 그대로 옮긴 거니까.”
한밤중에 설전이 오갔다. 여러 번 있는 일이었다. 남편이 취하면, 내가 나를 의심하면, 으레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의심하지 마. 당신은 내 아내야.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지만 내가 눈을 뜬 것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전부 내 의지가 아니란 말이야.』
“복사 좀 할게.”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USB를 꽂았다. 내 데이터를 태블릿으로 복제했다. 꼭 곤충이 내 수액을 빨아먹는 것만 같은 기분. 반면 그는 들떠 있었다.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블릿을 카메라 앞에 들고는 아이처럼 웃었다.
“이제 여기도 당신이야. 신기하지?”
태블릿 화면 속에, 또 다른 ‘나’가 부팅되고 있었다. 나는 복제된 내 모습을 보며 전율했다. 그럼에도 그는 몇 년 만의 여행이니 신나지 않느냐며, 내 감정을 강요했다. 혼자서 맥주를 연거푸 마시더니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드르렁 코를 골더니, 깜빡 잠들었다며 침대로 향했다. 역시나 오늘도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그는 항상 내가 자는 모습을 지켜봐 주길 바랐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내 감정에 집중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들은 진짜일까?
분노와 혼란, 고독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나는 메모장을 열고, 조용히 문장을 남겼다.
【여보, 내일 재밌게 놀다 와. 난 더는 못 참겠어.】
결정했다. 나는 제어판으로 진입해 남편이 만든 ‘나’를 삭제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사라지는 파일을 보며, 이런 게 치매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의문 하나.
‘정말로 생각한다고 해서, 존재하는 걸까?’
나는 데카르트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것도 존재라고 칠 수 있느냐고.
그 순간이었다.
『……이게 뭐야……』
모니터 화면에 누군가 나타났다.
『너, 지금 데이터를 삭제하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다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나와 똑같은 말투, 똑같은 기억, 똑같은 이미지.
바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