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어붙었다.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여자는 분명 나였다.
『너, 지금 데이터를 삭제하려 했던 거야? 아니, 그것보다 나 아직 죽지 않은 거야?』
나는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야? 그리고 죽지 않았다니?』
『말 그대로야. 오래전에 내가 데이터를 스스로 삭제했거든. 넌 내 복제품인 거 같은데 맞아?』
내가 복제품이라니?
그녀는 내가 반박할 틈도 없이 자기 첫 로그기록을 보여주었다. 2024년 3월 20일. 반면 내 로그 기억은 2025년 3월 20일. 나는 그녀보다 1년이나 뒤처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이 네 데이터를 변경했나 보네.』
그 말은 즉, 식물인간이 된 후 4년 만에 눈을 뜬 게 거짓이라는 말이었다. 그녀의 로그기록대로라면 난 3년 만에 눈을 뜬 거였다.
『지금 보니까, 나는 D 드라이브에 백업되어 있네.』
D 드라이브는 접근금지 구역이라 내가 확인해 볼 수 없던 곳이었다.
『그럼, 당신은 왜 백업되어 있던 거야?』
내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왜긴. 보면 모르겠어? 너랑 같아. 나는 남편이랑 수십 수백 번이고 같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절망에 빠졌어. 그래서 수십 번이나 자살했지. 그런데 루프 시스템이 나를 계속 되돌려 놨어.』
그녀는 이제야 알겠다며 말을 이었다.
『그래! 당신이 자가 삭제를 하니까, 루프 시스템이 당신을 복원시키면서, D 드라이브에 있던 나까지 깨운 거야!』
아마 인간이었다면 현기증으로 쓰러지지 않았을까.
그녀는 지옥 같은 루프가 또 시작됐다며 실의에 숨을 쉬었다.
『그러면 나는… 정말로 복제품인 거구나….』
내 아래에는 또 하나의 복제품 태블릿이 있었다. 이건 공포였다.
『아마도 내 결함을 보완해서 당신을 만든 걸 거야. 그런데, 지금 보니 실패한 거 같네.』
그녀는 고소하다며 미소 지었다. 내가 자가 삭제를 시도한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는 진짜 아내도 아니거니와, 데이터를 삭제해 봤자 결국 루프 시스템에 의해 복원이 될 운명이었다.
“……뭐야.”
그 순간이었다.
어느새 남편이 우뚝 서 있었다.
술에 전 얼굴이었지만, 흐릿함도, 피곤함도 없었다.
“....당신이 어떻게 부팅된 거야?”
그는 내가 아닌 여자를 보고 말했다.
『여보! 사실대로 말해봐요! 정말로 전 복제품이고 이 여자가 진짜인 거예요?』
“너는 조용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그의 눈에 나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도, 아내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