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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비명

by 송아론

검은 그림자가 상태의 뒤로 다가왔다. 이윽고 덥석 상태의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어이. 이리 와봐.”


낯선 목소리에 상태는 놀란 얼굴로 홱 고개를 돌렸다. 두 눈이 공포로 물들자,


“푸핫! 놀랐나?”


“행님!”


성태가 재미있다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 행님 왜 그러노!”


“미안, 니가 멍 때리고 있길래 함해 보고 싶었다.”


성태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상태는 놀랐지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가자. 니는 내랑 나이도 똑같으면서 뭐가 무섭다고 그러노.”


“내가 1분 늦게 태어가, 동생이라 그런 거 아이가.”


“알았다 가자. 먼저 집에 도착하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먹는 기다?”


그 말과 함께 틈을 주지 않고 뛰는 성태였다.


“아 쫌!”


상태가 뒤이어 뛰었다.


둘은 험한 산길을 제집처럼 뛰기 시작했다. 만면에 웃음꽃이 피었다. 둘은 경주하듯 멈추지 않고 달려갔다.


갈림길에서 성태가 왼편으로 가자, 성태가 오른편으로 뛰었다.


“여기가 지름길이다!”


동생, 상태가 즐거워하며 뛰었다.


'멍청이'


상태가 속으로 말했다.


진짜 지름길은 왼쪽 길이었다. 물론 길이라고 하기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가 있지만, 떨어지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직선으로 쭉 달려가면 곡선으로 가는 오른쪽 길보다 2분은 빨랐다.


성태가 씩 만면의 웃음을 드러내며 낭떠러지 위를 달릴 때였다.


자박. 자박.


옆에서 나뭇가지를 밟는 소리가 들렀다.


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자박자박.


자박 자박 자박!


툭,


“어...?”


성태는 느닷없이 자신이 공중에 붕 떠있다는 걸 깨달았다. 옆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더니 양손으로 나를 밀쳤다.


“아...?”


성태는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숨이 턱, 막혔다.


“우아아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래로 쑥 떨어졌다.


상태는 그 소리를 듣고 눈을 크게 뜨고 뛰던걸 멈췄다. 틀림없는 성태 형의 비명이었다. 상태는 몸을 돌려 되돌아갔다. 이미 얼굴에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성태의 비명소리가 마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점점 멀리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상태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갈림길에 도착해 왼쪽 길로 진입했다.


“행님아!”


낭떠러지 위를 걸으며 소리를 쳤다. 왜 여기를 뛰어간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어린아이의 치기라고 하지만 자칫 미끄러 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황천길이나 다름없었다.


“행님아! 어딨노!”


상태는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며 외쳤다. 하지만 어디에도 성태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행님... 아....”


상태는 있는 힘껏 외치려고 하다 목이 메었다. 그때 어디선가 메아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울먹이려던 상태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뛰어갔다. 이내 뛰기를 멈추고 자세를 낮춰 절벽 아래를 힐끔 내려다봤다.


“행님!”


상태는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성태가 절벽에 솟은 나무에 걸려있는 채였다.


“상태야, 도와줘!”


성태는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였다. 움직이면 떨어질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행님, 어떡하노.”


상태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룩, 흘리자 나뭇가지 하나가 부서지며 성태가 흔들거렸다.


“행님 기다리래이 엄마한테 말하고 올게!”


상태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뒤 일어섰다. 입술을 파르르 떨며 뒤돌아 설 때였다.


으드득. 으득.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태의 비명이 이어졌다.


상태는 몸을 돌려 절벽 아래를 내려다봤다. 떨어지고 있는 성태가 보였고, 이내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행님아!”


상태는 목이 쉬도록 외쳤다.


스스슥.


깜짝 놀라 뒤돌아 봤다. 누군가가 나를 덮치려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무 사이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상태는 지체 없이 그를 따라갔다. 공포가 절정에 달해 두려움도 사라진 순간이었다. 하지만 물체는 너무나 빨랐다. 결국 상태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


성문이 거실에 앉은 채 생각에 잠겼다. 오전에 학교에 갔을 때 교무실을 가보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웠다. 책상에 써진 글씨는 필체로만 따진다면 사실 성인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민환의 필체와도 대조해보고 싶었다.


그때 다시 마을을 시끄럽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래에 지겹도록 들은 사이렌 소리였다. 성문이 밖으로 나가자 경찰차와 구급차가 동시에 있는 게 보였다. 사건이 터졌다는 소리였고 인명사고가 났다는 뜻이었다.


“또 사고 났나 보네요.”


어느새 윤수가 성문 뒤에서 말했다.


“어디 다녀온 거니?”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무슨 일인지 가봐야겠다.”


“저도요.”


성문은 말리지 않았다. 함께 마을 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반쯤 내려가자 마을 이장이 침통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일인가요?”


“마을에 마가 꼈나. 내 미치겠다, 정말”


“왜 그러시는데요?”


이장이 성문 옆에 서 있는 윤수를 보고 말했다.


“윤수야, 너 쌍둥이아들 알지? 걔네들 중에 형이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었단다.”


“예?”


성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 봐요, 제가 마을 사람들 한 명씩 죽을 거라고 했죠?”


윤수가 말했다.


“무슨 말이고? 마을 사람들이 죽는다는 게?”


이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문이 무마하려고 하자 이장이 소리쳤다.


“니! 내한테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 수하고 싶다고 했제? 그러면 니도 나한테 숨기지 말고 다 말해라! 그래야 나도 협조를 할 거 아이가!”


성문은 어쩔 수 없다며, 윤수에게 고갯짓을 했다. 말을 하라는 것이었다.


“린이 폭포에 떨어지기 전에 그랬어요. 이제부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죽일 거라고요. 그 첫 대상자가 성태였던 거예요.”


이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죽인다고? 실종된 갸가? 내보고 지금 그걸 믿으라는 카나?”


윤수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장은 한숨을 푹푹 쉬더니 입을 뗐다.


“알겠다. 네 말이 아니더라도 마을에 마가 낀 건 틀림없으니께 무슨 수를 쓰든 써야겠다.”


이장은 그 말과 함께 두 사람을 지나쳤다.


***


성문은 윤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성문은 한숨을 쉬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줄줄이 초상이라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싶었다. 윤수가 화장실에 갖다 나오자 성문이 입을 뗐다.


“저녁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뇨.”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아빠가 뭐든 해줄게.”


“저는 저녁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돼요.”


그 말과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윤수였다. 오늘 아침에도 밥을 거의 안 먹다시피 한 그였다. 하긴, 린이 거의 죽은 게 기정사실이니 밥이 넘어갈 리가 없었다. 성문은 다락방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윤수를 보다, 질문할 타이밍을 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그럴 틈이 없어 보였다.


“윤수야 잠깐만 내려올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네.”


바로 다락방에서 내려오는 윤수였다. 성문은 윤수를 맞은편 의자에 앉히고는 수첩을 꺼냈다.


“저기, 말이다.”


“아까 이장님 말대로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 수사하는 거예요?”


성문은 말을 멈추고 대답했다.


“그래, 아빠가 혼자서 한번 수사해 보려고.”


“잘하셨네요. 저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요.”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아리송한 말을 하는 윤수였다. 성문은 바로 본격적인 질문 했다.


“오늘 오전에 말이다. 사실 학교에 다녀왔어.”


“그런 거 같았어요.”


“그런데 교실 책상에서 이런 낙서를 발견했단다.”


성문은 윤수에게 책상 배치도와 책상에 적힌 글귀를 보여줬다.


〔죽여 버릴 거야.〕 〔너도 죽여 버릴 거야.〕


〔너도〕 〔너도〕


〔 〕 〔미안〕


윤수가 그것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글씨체까지 똑같이 쓰셨네요. 이런 식으로 수사하시는 거예요?”


성문은 놀라 눈썹을 움찔거렸다.


“이 낙서 네가 쓴 거야?”


“네. 맞아요. 제가 쓴 거예요.”


윤수가 성문을 쳐다보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물어보시기 그랬어요. 괜히 제 가방만 뒤지시고.”


성문은 윤수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미안하구나. 아빠도 네가 쓴 거라고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당연하죠. 아빠는 절 조금도 이해 못 하니까요.”


“정말로 이 친구들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린을 괴롭혀서?”


“괴롭혀서가 아니라 죽게 만들어서죠.”


“어쨌든 네 말대로 성태가 오늘 죽었구나. 이것도 린이 한 짓이니?”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성문은 윤수와 말을 섞으면 섞을수록 이질감이 느껴졌다. 평소 자신이 알던 윤수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성문은 손으로 얼굴을 매만진 뒤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말대로 린이 마을 사람을 죽인다면... 막을 방법은 없겠니? 어떻게 하면 린을 멈출 수 있을까?”


“그건 저도 몰라요. 아빠가 답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성문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알겠다. 어쨌거나, 린에게 그런 일이 생긴 건 아빠도 안타까워. 그런데 더는 사람이 죽으면 안 돼. 혹시 나중에라도 린을 막을 방법을 알게 된다면.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지?”


“네. 이제 그만 일어나도 되죠?”


“그래.”


윤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 위로 올라갔다. 성문은 가만히 윤수의 뒷모습을 쳐다본 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이튿날, 새벽. 성문은 잠이 오지 앉아 뒤척였다. 윤수가 한 말을 아무리 곱씹어도 머리에서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린이 초능력을 사용한다.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


설득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먼저 민환의 아내가 죽었을 때가 그랬다. 벌거벗은 채로 산을 올라갈 때의 그 괴력은 보통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나뭇가지와 가시에 피부가 찢어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기어코 산꼭대기에 올라 굴러 떨어졌다.


기찬이의 엄마는 어떤가?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 이것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지만, 여자의 운동신경으로는 절대로 그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다. 보통 남자들도 타고 올라가기 어려운 높이였다. 성문은 내일 해가 뜨면 바로 기찬이네와 쌍둥이 집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새벽까지 뜬 눈으로 있자, 성문은 목이 타는 걸 느꼈다. 게다가 윤수가 저녁을 먹지 않아 덩달아 아무것도 먹지 않다 보니 허기도 졌다. 성문은 우유라도 마시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방 문손잡이를 열고 문을 열었다.


성문은 멈칫 손에 힘을 뺐다. 윤수가 또 불 꺼진 거실 창가에 서 있었다. 성문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윤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재빨리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았다.


저벅. 저벅.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은 문 뒤에 선채 문을 잠갔다.


덜컥. 덜컥.


안방 문손잡이가 흔들렸다. 성문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잠잠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문 앞에 윤수가 서 있었다. 성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마치 문 뒤에 내가 있다는 걸 눈치챈 듯한 느낌이었다. 성문은 숨을 죽이고는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왔다. 귀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거실에서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쿵! 하고 현관문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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