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 워킹맘이 되던 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by 온다


평소와는 다른 몸 상태에 ‘아냐, 그럴리가 없어’ 라면서도 임신 테스트기를 구입했습니다. 둘째를 낳고 복직한지 6개월째. 출산휴가밖에 쓰지 않아 출산한 지 9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테스트기에 나온 두 줄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이제는 회사에서도 중심을 잡고 다시 달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녁마다 아무도 없는 빈 회의실에 가서 조용히 울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 회사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내 꿈도 이제 더 이상은 무리겠지.


회사 어딘가에 아이가 셋인 분이 있다고는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전설처럼 ‘있다고 하더라’라는 말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습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은 간혹 있었지만 그 아이들의 엄마는 일을 그만둬야만 했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제 딴에는,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일단은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의지를 다지고, 잘 키우고 더 열심히 살아보기로. 회사에는 4개월이 될 때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어리석고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이지만, 겁을 먹기도 했고 과장 진급을 앞둔 것이 걱정이 되기도 한 터였기 때문이죠.


이윽고 얘기를 꺼냈을 때, 저의 상사 분은 ‘아이는 축복이지. 정말 축하해’라며 다소 놀라면서도 진심 어린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그간 열심히 했던 것을 조금은 인정받은 것 일까요. ‘저 회사 계속 다닐 거예요.’ 라는 말에 선배들이 걱정 말라며 많은 격려와 지지도 받았습니다. 둘째를 봐주시던 이모님도 셋째를 돌보는 일을 계속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운이 좋게 잘 풀렸습니다. 저만 굳게 마음을 먹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었습니다.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는 소문이었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수군수군 할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평소 연락 없던 사람들도 셋째 소식을 들었다며 먼저 인사하고 연락이 오곤 했으니까요. 그 순간들이 끔찍하게도 싫었습니다. “대단해.” 이 말이 어쩜 그렇게 듣기 거북 했는지요. 왜들 그렇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것 일까요. 그 관심은 따뜻한 정이 아닌 가십거리 일 뿐이라 그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 같습니다.


시간은 지나갑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막내가 3살. 저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과장으로도 승진했습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은 무척 두려웠지만 일단 지나고 나니 저만의 강력한 무기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아이가 셋인데도 해냈구나!’ 라며 조금 더 멋지게 봐주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잘 압니다. 제 자신이 잘나서 라거나 혼자만의 노력으로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남편의 강력한 지지,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모님,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내 역량을 믿어주는 회사 동료들,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 좋은 회사의 분위기와 제도.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 가능했던 시간이라 생각합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에는 온 동네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을 절감하는 경험입니다.


(저의 기준에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보고 나니,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선배들이 좋은 길을 잘 닦아줬는지 느껴집니다. 각자 상황도 모두 다르기에 앞으로도 계속 가보지 않는 길을 걷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그 길들이 다 합쳐져서 더 넓고 좋은 길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하나이든 둘이든 셋이든, 원한다면 일과 가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회로 점차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