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1
왜 태어났을까?
우리 가족은 어쩌다, 나같은 딸/언니를 만나서 이 고생일까?
나는 아홉살 때부터 이 고민을 하면서 잠을 못 이뤘다.
#2
처음에는 엄마를 위해 살았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삶
아빠로 인해 고통스러운 그 삶에서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엄마는 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엄마를 구해주기 위해선 공부를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래서 나는 공부했다.
내가 공부해야 엄마를 구할 수 있다고
진실로 믿었기 때문이다.
중고등 시절에
시험에서 하나 틀린 것을 알때마다 쉬는 시간에 울음이 터져나왔다.
애들은 '하나 틀렸다고 재수없네'라며 툴툴 거렸지만,
나는 재수없네가 아니라, 우리 엄마와 가족을 구하기 위해
공부를 잘 해야하고, 성공해야 하는데
시험 한 문제를 틀리면 그 모든 것이 망가질 것 같아 두려웠다.
나에겐 공부가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생존수단이었다.
#3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잘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공부밖에 없었다
(뭐 그렇다고 서울대 갈 정도는 아니다)
나의 트라우마지만,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기도 하다.
엄마와 동생을 잠시나마 구해줬지만, 나를 절망에 빠뜨리기도 했다.
#4
아빠의 죽음 이후 나는 다시 한번 삶을 택했다.
동생과 엄마를 위해서
아빠의 죽음 이후에 두 번째 죽음의 유혹이 있었지만,
엄마와 동생을 반드시 행복하게
아빠대신
내 힘으로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몇년 간, 그 꿈을 이뤘다.
그런데 그게 무너져버렸다.
동생의 선택은 나에게 너무나도 큰 절망이었다.
긴 시간의 두려움과 고통, 인내, 눈물, 피, 땀
그 모든 것을 걸고 15년을 살아왔는데
내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동생은 잠시 행복한 듯 보였지만,
다시 불행에 빠져버렸고 죽음을 택했다.
엄마도 드라마에서 보던 삶보다 더한 비극이 더해졌다.
#5
노력하면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행복해 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엄연히 출발선이 다르고
노력한다고 반드시 보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최소한, 정말 최소한
운명은 나에게 최소한의 그런 것을 베풀지 못하는 걸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고
물이 반이 담긴 컵을 보고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고 나를 다독이며
가족을 다독이며
잘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버티고 버텨서 조금씩
그 모든 노력의 끝이 이렇다니
내 인생의 노력과 의미란 무엇일까
#6
세 번째로,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죽고 싶었다.
검색도 많이 했다.
두려웠다.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선택하지 못했지.
새로운 가족 때문에
#7
나에겐 세 아이들이 있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너무도 멘탈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므로
내가 없어도 잘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
나는 내가 그렇게 자라왔기 때문에
부모가 어릴 때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부모님같은 사람이 될까봐 늘 경계했고 두려웠다.
내 동생이 나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상흔
그것만큼은 아이들에게 차마 줄 수 없다는 그 생각 하나로 버텼다.
슬픔과 우울은 나의 대에서 끝나야 한다.
아빠 혹은 그 위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유전자
혹은 집안 환경, 가난.
이 모든 것이
나의 대에서 끊겼으면 좋겠다.
아마도 동생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나의 아이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이모가 아직도 스페인으로 멀리 여행을 떠났다고 알고 있다.
죽음이라는 것은 게임속에서 Game Over가 되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다.
이 아이들 앞에서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고,
이 아이들에게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큰 것을 주는 것은 정말 죄악이라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철없는 엄마일지라도
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지켜줘야지
나는 스무살에 아빠가 돌아가셔도 힘들었는데, 내가 그러면 안되는 것이다
#8
억지로 부여잡은 정신
살기위한 방법을 찾아서 발버둥쳤다.
나는 아파요.
나는 이런 상처가 있어요.
배려해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부끄럽지도 않은가 싶을 정도로 주변에 외쳤다.
#9
얼마 전의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부여잡았다.
이제는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남편을 위해서도 있다.
부부생활이라는 것이 늘 좋을 수많은 없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도 많은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작년의 동생의 죽음 이후 남편의 생각과 태도에 대해
나는 너무나도 큰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빚을 갚으면서 나는 살아야 한다.
나의 아이들과 남편에게 평생 보은을 하면서 나는 살아가고 싶다.
#10
몇 주 전, 종합심리검사를 받았다.
상담사의 마지막 문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있나요?
그렇다면 바로 뛰어내리는 방식으로 바로 즉흥적으로 죽고 싶을 것 같아요.
아니면
내일 아침 눈을 떴을때 내가 사라졌으면 좋을 것 같아요?
나는 앞서 말했듯이,
마음을 고쳐 먹었기 때문에
죽고 싶은 생각에 대해서는 접었다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분은 다시 짚었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하셨잖아요, 그런 것들이 전혀 없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유소년기에는 엄마를 그 생활에서 구하기 위해서
청년기에는 엄마와 동생의 안위를 위해서
지금은 세 아이와 남편을 위해서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있다.
그것도 열심히 뻔뻔하게
언젠가는 나의 몸부림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나를 위해서 살아보고 싶다
나를 위해서만 오롯이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