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by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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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연애상담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서예였다.


미래의 희망을 버리고, 오늘만 바라보며 살자고 시작한 그때, 회사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무언가 하나 해보고 싶었다. 그것이 서예였다. 젊고 고운 선생님의 서예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글씨를 처음 배우 듯이 붓으로 '가, 나'를 써 나가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글씨를 쓰면서 생판 모르는 사이인데도, 시시콜콜 서로의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두번째 만남이었다. 선생님의 연애가 슬프게 끝난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해주다가, 어쩌다보니 나의 상담이야기와 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약을 먹고 있다고 하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질까봐,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는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우르르 나와버렸다.


보통은 '아, 그렇군요. 슬픈 일입니다. 힘드셨겠어요.' 라고 넘어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저도 그랬어요. 7년 전에 동생이 갑자기 떠났어요




마음이 순간 쿵 내려앉았다. 오늘은 'ㄹ'을 배우기로 했다. 쓰고 싶은 글귀가 있으면 생각해오라고 적어줄테니 연습해오라고 한 날이었다. 지난 번에 배운 '가, 나'를 천천히 쓰는데 집중력이 점점 흐트러졌다.




그런데요,
선생님은 그 일 이후로 삶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시진 않았나요?

저는 이 세상이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동생이 떠나고 며칠 뒤
동생이 아르바이트 했던 곳에서
급여가 입금되었는데

이게 다 뭔가 싶고,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더라고요



누구나 다 비슷하게 느끼는 것인가보다. 삶이란 무엇이며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날 수 있으며,이렇게 허무한 삶 왜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걸까. 점점 마음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생은 죽기 전날 까지도 공부를 하고, 여행 계획을 짜고, 회사에 갈 걱정을 했다. 그리고 그 후에 남는 것들은 무엇 되었든 죽은 동생을 위해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들 뿐이었다.




저는요, 그때
부모님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제대로 슬퍼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슬퍼하고 마음을 달랬어요.
<귀천>이라는 시를 아세요?
그 시를 참 많이 썼어요.


<귀천>이라,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그 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소풍 이런 조각조각 단어들이 생각났다. 참 기계적으로 읽고 공부라 생각했지 한번도 제대로 음미하며 읽어본 적이 없었다. 검색하자마자 나온 마지막 싯구에 울컥했다.






귀 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게 이렇게 슬픈 시였나. 문학에서 동그라미치고 밑줄 그으며 문제가 나올 만한 것을 외웠을 뿐이었다. 이렇게 절절한 느낌이었구나. 동생에게 죽음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이었을까? 그렇게 아프고 괴로웠던 삶일지라도 가서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하늘로 돌아간 것일까. 하늘로 돌아가긴 한걸까.


나는 '다'도 쓰고 '듣'도 쓰고, '로'도 쓰고 '롤'도 썼다. 글씨가 점점 흐트러졌다. 선생님은 너무나도 담백하고 담담하게 말해서 더 슬펐다. 흐트러진 글씨를 보고 희미하게 웃으며 "계속 글만 쓰려니 힘드시죠?" 라고 말하는 선생님에게 차마 '갑자기 슬퍼져서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눈물이 가득 고이려는 것을 꾹꾹 눌러담아 붓으로 글씨를 계속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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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이 끝나고, 한참 동안을 멍하게 앉아있었다.그 짧은 감정만으로도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데리러가는데 구름이 참 예뼜다. 주홍,분홍과 파랑 이런 색상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라 생각했는데. 노을 지기 전의 구름들을 보면 구름이 분홍, 연한 보라, 연한 주홍빛, 떄로는 노란 빛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하늘 색의 하늘과 참 예쁘게 어우러진다.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귀천>의 싯구가 자꾸만 생각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다. 저녁의 아름다운 구름과 천상병 시인의 시와, 선생님의 담담한 목소리가 가슴 속 깊이 슬픔으로 지긋이 스며드는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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