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서,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1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 입으로 뱉기는 쉬워도 실제로 하기엔 매우 어렵습니다. 일단 죽음 이후에 대해 알지 못하는 두려움 때문이고, 고통이 없는 죽음 방법이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삶을 스스로 끝낸다는 것은 굉장히 큰 에너지와, 결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쉬운 단어인지 몰랐습니다. (지금은 자책골이라 불리우지만)자살골이라든가. 무언가 힘들 때 머리에 총을 겨누는 그림, 목을 메는 줄을 그린 그림,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며 힘듦을 희화하 하는 그림이나 쉽게 힘들거나 창피한 순간에 '자살하고 싶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정말 이 단어의 무서움을 이렇게도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딱히 특정하긴 어렵지만, 작년에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서빙 로봇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났는데, 이걸 보고 "일이 힘들어서 자살했나 봄" 이라 하며 웃는 카톡 내용이 각종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2
저는 자살/죽음 전문가는 아닙니다. 자살 유가족일 뿐입니다. 2년 반의 시간을 거치면서, 심리부검도 받고, 상담도 오랜시간 받았습니다. 죽음에 대한 책을 읽고 왜 살아야 하고 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동생이 남긴 글들과, 여러 정황들을 수집하며 분석을 하기도 하고, 동생이 다녔던 정신의학과에서 상담기록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살예방센터의 상담사님과 함께 동생과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저 역시도 삶을 마감하고 싶었고, 진지하게 방법과 시기를 고민하기도 했으며, 끝없는 슬픔에 빠졌다가, 그리워했다 원망했다.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시간들을 극복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원치 않게 너는 어떻게 살아남고 마음을 다잡고 살아갈 수 있는지에 심도있게 물어보며 그 사람들과 안좋게 멀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제가 얻은 나름의 답이 있습니다.
#3
일단 자살은, '1+1=2' 처럼 명확한 인과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일 당장 죽고 싶어'해서 내일 당장 그것을 실행하기는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오랜시간동안 그 이미지가 자주 떠오르며, 점점 더 방법과 시기, 장소에 대해 구체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주변에서 다만 모를 뿐이지요.
세상에 대해 자신이 힘든 것을 남이나 세상을 탓하기 보다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자살입니다. 자살자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하게 살아오거나, 밝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혹은 당일에도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지요. 이것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포인트입니다.
분명 지난 번 만날 때 까지만해도, 지난 주에 같이 밥을 먹었을 때만 해도. 내가 어제 말을 걸었는데. 내가 몇시간 전에 카톡을 봤는데, 갑자기?
불평불만을 내쏟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잘 살아갑니다. 내 안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말로 내뱉으면서, 감정을 표현하면서 어느 정도 감정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분을 잘 표현하지 않고 밝은 사람일 수록 스스로의 감정을 갉아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저는 감정을 계속 뱉어왔던 사람이고, 동생은 감정을 삼키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들도 늘 신선같이 모든 것에 통달하고 용기있고, 힘듦이 없는 사람같았다 합니다. 하지만 한결같이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누구에게나 인생은 쉽지 않고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은 척을 하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요.
#4
그래서 가끔은 포털사이트에 일반 사람의 자살 기사가 나왔을 때, 누군가의 괴롭힘. 누구 때문에 라고 특정을 몰아붙이면서 그 사람을 가해자로 몰고가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됩니다.
아마 그 사람은 계속해서 주변에서는 감지하기 어려운 신호를 보냈을 겁니다. 그 누구도 감지하지 못했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 수 없었고. 더 이상의 희망과 선택이 없기 때문에 그런 어려운 선택을 한 것입니다. 오랜기간 동안 굉장히 고통스러워 하면서요.
그래서 누구 한 사람의 때문도 아니고, 모두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그 사람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주변에 퍼지는 우울함과 충격은 너무도 무겁고 크고, 두렵습니다.
#5
가끔 누군가를 괴롭히는 사람들이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얌체같이 교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사람이 말을 하지 않고,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감정을 못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모두가 대부분이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표면으로 꺼내기에는 본인이 감당하기 어렵다든지, 그냥 한 번 참으면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든지,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함께 침묵할 뿐이죠.
갑작스러운 죽음의 이면엔, 복잡하고 긴 고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서서히 사람을 갉아먹고 다른 생각을 하기 힘들게 사고를 폐쇄적으로 점점 마음을 닫아버리게 만드는. 그것이 상황이든, 타고난 성정이든간에 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결심을 하지 않고서야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죠. 오랜시간 그립고 미안함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늘 항상 곁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if, if, if 라고 계속 반복했습니다. 내가 그날 돌아봤더라면, 몇 달 전에 그 모습을 보고 연락했더라면, 내가 좀더 챙겼더라면.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만약이라는 것은 지금을 근거로 과거를 해석한 것일 뿐, 과거에 모르는채 돌아가도 똑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만약이라는 것은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 실존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받아들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미안함을 안고, 마음에 묻고 살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자살 유가족이 되어 느끼는 무거움과 슬픔을 알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의 내 가족들에게 이런 아픔을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갑작스럽게 주변에 느껴질 뿐이지, 실제로 갑작스러운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때로는 기댈 곳, 친밀함, 따스함이라든지 지금의 힘듦에도 끝이 있고 함께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지금에서 잠시 그만두고 빠져나오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야 합니다. 주변사람들의 관심과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크나큰 고통을 감내하다 결국은 자신을 버리는 것 뿐인 선택인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괴로울까요. 감히 그 아픔을 추측할 수 조차 없습니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하기 전에 잠시 지금의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선택을 먼저 해보고, 도움도 요청해보고,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무 아픈 나를 위해서요. 너무도 아프고 가녀리고 나에게 비수를 돌리는 내 자신에게 단 한번의 자비와 위로를 베풀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