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생일
제경아, 어제는 네가 세상을 떠나고서 세 번째 너의 생일이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제경이 생일이니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셨어.
아빠의 생신은 음력이기도 했지만, 돌아가신지 18년이 되어서 이제 생신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본지가 꽤나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자매이지만 엄마에겐 자식이니 얼마나 네가 그립겠니. 사후세계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해도 가족을 지켜볼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늘 기도를 하고 계시단다. 열심히 살아준 너에게 고맙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평안하기를 말이야.
우리는 뭐, 제사상을 제대로 차려본 적이 없잖아. 격식없이 술 대신 사이다를 내어드리기도 하고, 납골당에 아버지의 칸에 꽃을 붙여드리기도 하고, 절에 가서 연등을 걸기도 했지. 그리고 늘 기도했지 우리 가족을 지켜달라고 말이야. 아마도 아빠가 지켜보고 있고, 지켜주고 계실 거란 믿음이 어렴풋하게 있을 거라고 그때 너 이사하면서 내가 짐 옮겨줄 때 얘기했잖아.
제사를 차리는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엄마와 나는 처음으로 맞은 네가 떠난 후의 생일에 케이크와 커피 그리고 꽃다발을 사갔지. 그 다음엔 케이크와 커피를 사갔다. 어차피 그곳에 있는 꽃들 하루만 지나도 다 떼어버리니 말이야.
그리고 어제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어. 찾아가서 보고,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고맙다고 전달하고 그 마음으로 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어. 그냥 이건 내 생각이야. 혹시라도 격식을 차려야 했거나 정말 제사상이라는 것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굉장히 실례일 수도 있겠구나.
엄마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코다리찜을 먹고 싶다고 했어. 늘 혼자 밥을 사먹다보니, 혼자서 시킬 수 없는 코다리찜이 너무 드시고 싶었대. 알잖아, 내가 너같이 살뜰하게 상냥하게 잘 챙기는 딸이 아니라는 거. 하지만 그날은 너의 생일이었고, 엄마가 함께와서 너무 기뻐하셔서 멀리 있는 맛있는 곳으로 함께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엄마는 나보다 말도 안되게 슬프셨겠지만, 너의 열심히 살아간 흔적과 엄마가 충분히 살아가실 수 있게 마련한 집을 보면서 엄마가 본인이 잘 해주지 못해 늘 미안했지만 열심히 살아간 너의 삶에 감사하고 더이상 아프지 않고 평안하기를 틈만나면 기도 하신대.
3년이 또 지났구나. 그 간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지 뭐야. 정신이 없어서 이 기억과 저 기억이 뒤죽박죽 섞여있어. 나는 말이지. 지난 만 2년, 지금은 3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정말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고 독기가 오르기도 하고, 한 없이 늪으로 빠져들기도 했어.
네가 세상을 떠난 것에 나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이 아닐까, 벼랑 끝에서 뛰어내릴락 말락한 사람 손가락으로 마지막에 툭 건든 사람 내가 아닐까. 난 그래서 살인자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말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속이 좁아서 더 넓게 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단순히 내 속이 좁은 것이 살아가는데 불편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사람의 죽음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인지 너무도 무섭고 무서워서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들도 많았어.
아빠가 돌아가셨을때에도 생각했지. 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똑같이 생각했어. 아빠가 떠났을 때엔 너와 엄마를 위해서, 네가 떠났을 때엔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야겠다. 그것이 늘 결론이었어. 그건 핑계일 수도 있지. 살고 싶은 내 본능의 욕망을 투영시킨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어.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계속해서 생각했지 뭐야. 나는 원래 내가 살았던 집에 들어가면, 무엇이 바뀌었는지 내 물건이 무엇이 남아있는지, 내 추억의 챙길 물건은 없는지 늘 유심히 돌아보곤했어. 그런데 그날따라 엄마의 말에 너의 태도에 너무 화가나서 집을 둘러보지 않았지. 그리고 다음날 네가 회사에 오지 않아 실종신고를 하고, 경찰관, 소방서 분들과 집 문을 따고 들어갔을 때, 우울증 약이 책상에 가득 놓인 것을 보고 무서웠어.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실종신고를 하는 와중에도 혹시 저의 문자 때문일까요. 나의 기나긴 동생과의 마음 다툼과 상처 때문일까요. 경찰관님에게 아무리 보여줘도. 다들 "이 정도로 그럴 것 같진 않은데요"라는 말로 안심했어.
내가 그날 엄마의 초대를 거절했더라면, 그럴 일이 없었을까? 아니면, 기분이 나빴던 때라도 늘 그래왔듯이 내 옛 물건들이 잘 있는지 집안을 천천히 둘러봤더라면, 너의 책상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정신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보고 걱정을 하며 연락을 했을까? 나의 마음 속에 진 응어리를 내가 살기 위해 너에게 문자로 화내지 않았다면, 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정말 드라마나 소설에 나올 법한 엘레베이터를 스쳐지나가며 서로를 못알아보는 그런 운명의 장난 처럼 말이야. 나에겐 그런 것으로 느껴졌어. 너무 괴로웠어.
미안해, 난 알고 싶어서 너의 일기도 읽어보고, 네가 쓴 글 들도 읽어봤어. 그런데 그런 글이 있더라 내가 죽더라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고, 나는 평온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네가 쓴 단편소설 말이야. 그걸 몇 번이고 읽었어. 넌 도대체 누구를 그렇게 사랑하고, 허망하고 슬퍼하고 아팠던거니.
제경아, 나는 일단 살아가기로 선택했어. 선택을 했으면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가는거야. 살기로 선택을 했다면, 잘 살아야지. 나와 내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나를 도와줬던 수많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해. 지금부터 작게나마 너의 친한 친구들에게도 살뜰히 챙기고. 너와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을 기억하고, 도와주고, 베풀면서 살아나가려고. 그러다가 정말 더 잘 되면, 정말 더 좋은 일들 하면서 아름다움 소풍처럼 이 세상 지내다 떠나려고.
이전처럼 너를 생각하며 울지 않는 것은 괴롭지 않아서가 아니야.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 혹은 나를 지켜보고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잠시라도 함께 이 생에서 짧았지만 자매로서 잘 지냈고 열심히 살아온 너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더이상의 아픔없이 평안하기를 늘 기도해. 생일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