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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Mar 11. 2022

평범한 직장인의 평범하지 않은 죽음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1

 자살 유가족이 되어서 느낀 점 중에 하나는, 직장인의 자살에 대한 기사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 입니다. 지난 10년간 자살 인구는 줄어들었습니다. 절대적인 수치로도 그렇고, 인구 수 대비로 해도 그렇습니다.


https://spckorea-stat.or.kr/korea01.do


 지난 시간 동안 자살에 대한 사건은 유명인,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연예인에 대해 주로 다뤄져 왔습니다.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A씨 와 같은 기사는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해서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로 인해 자살을 하게 되었다는 기사가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2

 사실 이런 현상은 저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동생의 죽음을 자꾸만 상기시켜 주었기 때문이죠. 기사에서는 누군가의 괴롭힘에 의한 선택으로 보인다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댓글에는 "ㅇㅇ이 나쁜 놈이네"라고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자살한 사람의 주변인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3

 또 다른 유형의 댓글들이 있었습니다.



그깟 직장이 뭐라고, 아까운 목숨을


 이것은 우울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에 충동적이기 보다는, 오랫동안 우울함이 누적되고 우울증으로 발전이 되며, 더 이상 출구가 없다고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우울증을 겪어보았고,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자살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고 깊게 해본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 감히 얘기하고 싶습니다.


 


#4

 사람들은 '우울증'에 대해 쉽게 생각합니다. 내가 조금만 우울해도, 우울한 날이 지속되면 우울증이라 판단을 스스로 내립니다. 그러면서도 상담을 받기를 꺼리거나, 정신의학과에 가서 약물치료를 받기를 꺼립니다.


 "나는 우울증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라고 스스로 쉽게 판단하기 때문이죠.


 그 정도는 아니다, 라고 느끼는 것은 우울증이라기보다는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인 것입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에서는, 우울증인 사람들에게 너무 쉽게 하는 실례가 되는 말이 바로, "운동좀 해, 햇빛 좀 쐬고, 취미도 가져"라고 합니다.


 우울증에 빠지게 되면, 일상 생활이 버겁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견디는 일 자체가 무겁습니다. 예를 들자면, 드라마 한 편에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재미있는 것에도 잠시라도 집중 할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경기 조차도 볼 힘이 없습니다. 그 승패의 팽팽한 감당할 에너지가 안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을 하러 가는 일 자체가 가장 힘겨운 일입니다.


 내 존재 자체가 잘못 된 것 같고, 더 이상의 출구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죽어야지만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왜곡된 생각에 사로 잡힙니다.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도 위와 같습니다. 이 직장에서조차 해내지 못하는 데, 내가 다른 곳에서 해낼 수 있을까요? 나라는 사람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과연 이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 이것을 그만둔다고 해서 지금의 고통이 사라질까요?


 그럴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가까운 사람. 가족, 친밀한 친구, 지인, 애인 혹은 상담사와 의사입니다. 그들 만이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만 둬도 괜찮아. 넌 그대로 괜찮아"라고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서 잠시 쉬다보면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직장이 세상의 다가 아니고, 인생의 다가 아니라고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쉬어 봅니다. 그러면 알게 됩니다. 나는 작은 왜곡된 상자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요.




#5

 하지만 어렵습니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가족이 있어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정신병자 같고 너무 쓸모없이 약한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괴롭힌 사람만이 잘못일까요? 이것은 우리나라 사회의 급속한 성장의 이면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갈아넣는 문화, 모든 것을 잘하고 빨리 해내야 하는 문화가 사람들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듭니다. 곳간있는 곳에서 인심이 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인심이 날만한 곳간의 여유가 없습니다.


 괴롭힌 사람 외에 자기와는 무관하다 생각해 혹은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들어 방관한 사람들 역시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가장 가깝게 지켜줬던 가족들과 친구들도 애인도 모두 그렇습니다. 


 누구 하나라도, 그에게 탈출구를 알려줬다면 말해줬다면 그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6

 아닐 수도 있습니다. 죽음이 꼭 나쁜 선택일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남은 사람들이 힘든 것이지, 떠난 사람들이 힘든 것을 알려나요.


 하지만, 누군가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 특히나 밝게만 보였던 그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나 요즘 조금 힘들어"라고 말하면, 귀기울여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각박한 사회이지만 친절한 미소 하나, 친절한 인사 하나 건네시길 바랍니다. 평범한 직장인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인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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