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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Jun 12. 2022

모든 것은 양면의 날

나를 만나서 미안해, 하지만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이 되도록 노력할게



#1

  처음 기억은 아홉 살 때였다. 자기 전에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요.
나 같은 딸을 만나서.
더 야무지고, 착한 딸을 만났으면
엄마, 아빠가 더 행복했을텐데.

미안해.
나 같이 쪼잔한 언니를 만나서.
더 좋은 언니를 만났다면 네가,
더욱 잘 지냈을텐데


 나의 못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인공포증도 있고, 친구도 없고,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핟다는 것 뿐. 마음에 들지 못하고, 무례함에 당하고, 억울함이 생겨도 한마디 말 한 번 못하는 그런 못난 나.  아빠가 엄마를 때릴 때, 방에서 동생과 부둥켜 안고, 그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지키지 못하는 나여서 미안했다.


 나라는 사람은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나는 이렇게 주변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무력하고, 못난 사람인데 도대체 왜 태어나야 했을까? 그리고 난 왜 이렇게 하루하루가 힘들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홉 살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조금 슬프긴 한다. 내 아이가 열 두살이 되어서 보니 그렇다.




#2

 순하고 순한 가족 중에 가장 독한 사람이 그나마 나였다. 나도 여기저기서 괴롭힘 당하고 얻어맞기도 하고, 무례함을 여러 번 당하면서 그에 대해 대응을 어쩔 줄을 모르며 삭히고 넘어가기만 하고, 나의 모자람을 다그치기만 하고 그렇게 몇 십년을 살아왔다.


 엄마는 우리 가족을 지킬 사람이 나 뿐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내가 모자라고 부족하고, 속이 좁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중에서는 가장 못 될(?)수 있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못나게도 밖에선 그러지 못하고 괜히 집에서만 화를 냈다. 그것은 더더욱 내가 나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무력하고, 힘이 없고, 밖에서는 한없이 약하고 엄하게 집에서 화풀이를 하거나, 엄마아빠가 싸우는 날에 내가 엄마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힘들었다. 무력하다. 미약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우리 가족은 너무도 순하고 약하다. 자꾸만 당하고 상처받고. 나 역시도 약하디 약한 사람인데. 이 네 사람 중에 가장 그나마 독한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센 척, 그렇지 않은 척. 사람들은 의외로 오감에 약하고, 외부의 모습에 흔들리기 때문에 내가 진짜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런 척을 함으로써 나를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스무살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깨달았다.




#3

 이 유전자. 아마도 내 동생도 생각했을 것이다. 이 슬픔고 괴로움의 유전자. 너무나도 예민하고 슬프고 우울함을 가득 지닌 연약하고 연약한 그 유전자. 이 대에서 이 슬픔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 그런데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나의 아이는 나와 다르다. 아버지가 바르고 강한 사람이다. 나는 남편에게 맞지 않는다. 나 역시도 가끔은 내 어머니와 비슷하게 나도 모르게 행동할 때가 있지마는, 부모의 양육이 한 사람의 인격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서 너무나도 자세히 알기 때문에. 늘 조심하고 경계하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유전자라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아이는 약하고 예민했다. 남자아이 임에도, 감성이 많고 상처도 많이 받았다. 또래 남자아이들이라면 깊은 생각과 감정 배려없이, 별 생각없이 장난을 치고 놀아야 할 나이에, 하필이면 우리 집안의 유전자를 많이 받아 태어나 이런 성정의 사람이다.


 몇 주 전에, 첫째가 친구들의 괴롭힘이 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4

 나는 절대 어린 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도, 싹수가 노랗게 보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이 자라서 대부분 괴롭히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난 어떤 그런 못된 아이들이 우리아이에게 함부로 대하면 절대 그것을 "아이니까"라고 넘겨짚지 않는다.


 조금 치사하더라도, 어른으로써, 그 옆에 가서 위협의 목소리를 가한다. 눈빛을 쏜다거나, 말을 건다거나, 왜 그런 언행과 괴롭힘을 하는지에 대해 낱낱이 따지고 내 아이를 지키는 것에 노력한다. "아니 애한테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들이 커서 학교에서도 친구들을 괴롭히고, 회사에서도 동료들을 괴롭힌다. 작게는 마음의 괴롭힘이지만, 그 괴롭힘이 물질적으로든 지능적으로든 지속되거나 파괴적이면 희생자들은 분명히 발생한다. 나는 그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주고, 나와 내 가족을 기키는 노력에 대해 늘 경계하고 감시한다.


 


#5

 그런데 정말 웃기지도 않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첫째가 아이들이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에피소드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기가 못나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자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필기구를 가져와, 그 상황에 대해 글과 그림으로 나타냈다. 어떤 아이들, 이름, 어떤 학교, 우리 아이와의 관계, 그 아이들이 우리 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으면서 관계도를 그리고, 왜 그들은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가,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리더가 있고, 그의 리더가 나의 아이를 자신의 라이벌로 생각했기에 적당히 필요할 떄만 부르고 적절히 무시하며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 또한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모습이 아주 정확히 그려졌다.


 이건 참 재미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괴롭힘을 하도 많이 당하다보니, 그 아이들의 심리와 분위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까지 바로 시각화를 해서 아이를 보고 설득을 시킬 수 있엇다.




#6 

 내가 아마 괴롭힘을 당은 기억이 없느 인기 많은 아이었으면 절대 몰랐을 일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보고 굉장히 만족해하고 편안해 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이 직접 선택할 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았고, 결론적으로는 그 모임에서 떨어져 나와도 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잘 놀게 되었다.


참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했다.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으면, 그 짧은 상황의 이야기를 듣고도 관계를 생각하며,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사실 내가 당했던 괴롭힘들은 정말 죽고 싶은 만큼 힘든 것이었엇는데 말이다.




#7

 내가 태어난 원 가족, 그리고 내가 남편과 꾸린 나의 가족.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죄책감이 있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다. 난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아빠와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사람이다.


 난 내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고 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싶고, 그것이 나의 성정과 일치하는 삶이지만, 아이가 셋이고, 일을 하고 있고, 그렇기에 일이든 집안이든 아이들이든 제대로 늘 챙기지 못한다. 그렇기에 아홉살 때 생각했던 그 물음이 자꾸만 생각난다.


미안해, 나를 만나서



#8

 동생이 죽고 나서, 남편에게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런 개차반 집안의 정서가 불안한 나를 만나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서.  물론 나도 내가 남편을 사람했지만 남편이 원하는 가정과 내가 생각하는 삶은 다르기에 갈등이 많았다. 

 하지만 동생이 죽고나서 남편이 모든 겪는 것들이 그렇게 미안하고, 그런 엄마를 만난 아이들이 그렇게 미안한 것이다. 살고 싶지 않음 마을을 억지로 붙잡으며, 어릴 때 했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이 자꾸만 반복되었다.


미안해
내가 아닌 다른 아내
내가 아닌 다른 엄마
만났으면 더욱 행복하고
잘 살았을거야
미안해,
이번 생에 나를 가족으로 만나서




#9

 뭐 지금은.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지난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운명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30년 전 괴롭힘 당했던 일이 지금의 나의 아이에게 이것은 이런것이고 이렇게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상세히 알려줄 수 있는 식견과 여유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것이다.


 내가 겪어본 일이이게 더욱 잘 공감할 수 있고, 내가 이겨낸 일이기에 방법을 알려줄 수 있다. 이것으로 나는 나의 부족함을 너에게 대신한다.


 나를 만나서 미안했던 일들을, 내가 죽기 전까지, 나를 만나 행복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하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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