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길까? 라는 생각이 들때
#1
힘든 여름이었습니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오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큰 카운터 펀치를 맞고 난 이후에는 약해져있기 때문에, 작은 어려움도 크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큰 힘든 일이 있고, 또 비슷한 크기의 혹은 작은 크기의 어려움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을 때 이런 생각에 휩싸입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왜 그런 사람을 만난 것인지, 왜 그런 상황이 생긴 것인지. 왜 나에게만 그런 일이 연달아서 일어나는지. 왜, 왜, 왜 라며 화와 분노가 치솟습니다. 분노의 게이지가 일정 지점을 치고 올라가면 그것을 곧바로 슬픔과 우울로 이어집니다.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어두운 터널. 좋은 순간에 끝이 있듯이 안좋은 순간에도 끝이 있다는 사실을 그 안에서는 발견하기 힘듭니다.
#2
카운터 펀치 한 방과 함께, 쨉을 계속해서 때려맞던 어느 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상황을 "왜, 왜, 왜" 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가능성이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의 경험입니다. 명상에서 항상 배우던, '자극과 반응 그 사이의 간극에서의 선택'이라던 그 말과 비슷한 그런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의 이사에서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이사를 나갈 사람이 자꾸만 어깃장을 놓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왜 저런 사람이 우리의 인생에 꼬였을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못된 심보로 저런 말을 하며 상황을 어지럽게 만드는 걸까.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아 참 답답하고 화가나는 구나. 왜그럴까 왜 자꾸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서 내 인생이 힘들어지는걸까?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들을 책임져야지만 할까. 자꾸만 why에 몰입되어 나날이 에너지가 닳아갔습니다.
어머니가 전해 들은 아저씨의 마지막 막말을 듣고, "엄마, 잠시만요, 저 병원 좀 다녀오고서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라고 말을 남긴 채 집을 나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마침 손목이 다쳐 물리 치료를 받고 있는 중 이라 병원에 가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생각해봤습니다.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이 있을까? how to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왜 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휩싸이기 전에 잠시 stop으로 멈췄고, 운전을 하면서 생각을 다시 돌아봤습니다.
일단 그런 이상한 사람에게 대꾸를 하며 같이 화를 내거나 그 사람을 못된 놈이라고 욕하며 화를 내는 것은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더 화가 날 뿐이거나, 그 사람과 싸우게 되거나, 상황이 더 복잡해지거나, 내가 더 상처받는 것 외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의 화를 잠시 배제하고 how to에만 집중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후의 수단은 무엇일까? 소송을 하는 방법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송을 하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법률 자문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률자문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주변에 아는 변호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법률봉사단 지역에서 제공하는 마을변호사 등을 이용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률 자문단에게 물어보기 위해서는 한 번에 깔끔한 정리로 명쾌하게 설명을 정리한 뒤, 내가 궁금한 점을 정의해야 했습니다. 상황을 번호를 매겨가며 한 번에 읽어도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정리를 여러번 했고, 그 상황에 따른 법률적인 대응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달았습니다.
#3
소식을 듣고 돌아온 남편의 표정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차분해진 저의 모습을 보고 "어쩐 일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화를 내가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이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아무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달았으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고, 나름대로의 결론과 방법을 준비해서 실행하겠음을 알렸습니다. 법률자문단에 제출한 글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일은 사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어쩌면 살아오면서 늘 비슷한 크기로 있던 힘듦이었습니다. 그 모습과 크기가 다를 뿐이었죠. 늘 저는 화가 나거나 참았고, 상처를 받았으며, 분노를 하다 이내 우울해지고 슬퍼지곤 했습니다. 시간만이 해결해 주는 일이라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왜? why라는 생각보다. 어떻게 이것을 해결하지? how to. 감정을 배제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 마치 내가 타인, 전문가가 되어 나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줄 지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생각을 하다보니, 좋은 해결방안 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어땠을까요? 이사는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되려 맞받아 치지 않고, 조용히 할 말만 전하고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준비를 하다보니 상대방도 이내 수긍을 하고 원래 하던대로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습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맞받아치며 화를 냈다면 상황이 달라졌겠죠.
#4
그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는 늘 참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더이상 참지 않기로 다짐을 했죠. 억울하면 억울하다, 화가나면 화가난다. 서운하면 서운하다며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 나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 가식적으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않겠다며 온몸으로 그 감정을 대하고 표현했죠.
이번 일을 겪으면서, 꼭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화라는 감정에 휩싸였을 때, 잠시 감정을 배제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요.
어떤 상황이 와서 사람에게 화가 났더라도, 그 사람에게 화를 냈을 때 내가 불편할 것인가? 나에게 유리한 상황이 흘러갈 것인가? 정당하게 화를 내더라도 내가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을것인가?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고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5
오늘은 명상센터에 갔습니다. 저번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위와 같은 경험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말했죠.
"그런데, 얼마나 이런 태도가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늘 다 깨달았다 생각하고서 제자리로 되돌아 오거든요"
선생님은, 비밀번호를 입력해 와이파이를 접속했던 곳에 다시 핸드폰을 들고갔을 때, 자동으로 편하게 연결 되는 것처럼. 이 경험을 깊이 생각하고 누리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면, 반드시 다시 이 기억을 잃는 날에도 다시 오늘의 마음을 전보다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때의 경험을 한번 더 기억하고 기록해봅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why가 아닌 how to에 집중해보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