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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다 Dec 06. 2022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세상을 먼저 떠난 가족이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하고

Photo by Alexander Grey on Unsplash




#1

 아버지는 산을 아주 좋아하셨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산에 다녔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주말이 자유롭지 않았다. 대학을 가면 아빠와 함께 산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하는 것은 있을 바로 했어야 했다. 대학을 가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줄은 몰랐으니까.


 산을 다니고 싶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젊은이들이 화기애애하게 산을 다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외부의 동호회를 둘러봐도 딱히 내 나이 또래가 산에 가는 것을 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들어가게 된 것이 산악부다. 물론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어쨌든 아빠를 기억하고 싶어서, 아빠의 자취를 따라가고 싶어서 산에 다녔다.


 어느 날, 오래 된 앨범을 넘기다가 북한산 백운대를 아빠와 함께 오르면서 신기하다고 생각된 사진이 나왔다. 인수봉을 오르는 사람들이었다.

 

"아빠, 저 사람들은 왜 저기에 있는거야?"

"바위에도 길이 있단다. 그걸 오르는거야"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신기해서 찍은 사진 속의 사람이 되어 산을 다니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아빠는 지켜보고 계실까, 내가 아빠가 그리워서 산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도 엄마도 나름대로 내가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계실까


 나의 눈으로 혹시 그간 못봤던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혹시라도 멀리있는 새로운 산을 가게 될 때만 아빠 사진을 가지고 갔다. 혹시라도 모르니까.




#2

 그냥 상상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냥 철저한 내 상상이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라는 것이 있지만, 신처럼 전지전능하게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지 않을 것 같고, 누군가 그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그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곁에서 보고 들을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 그래서 항상 기일에 아빠에게 때에도, 납골당에서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얘기한다. 마음속으로 얘기하면 들을 것 같아서.


 동생에게도 그랬다. 미안하다는 편지를 많이 썼다. 용서해달라고, 미안하고 자랑스럽고 그렇다고 말이다. 그리고 동생의 핸드폰과 연결된 모든 계정을 남겨두었다. 가끔씩 친구들이 보고 싶을 까봐. 한번씩 계정이 지워지지 않도록 로그인해두는 것도 아직 3년이 되지 않았지만 잊지 않고 하고 있다. 


 동생의 물건을 아직도 아끼며 버리지 못한다. 화장품이나 기념품 중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들, 여행 티켓과 영수증 같은 것들은 이제야 조금씩 겨우 버리고 있다. 





#3

 어제는 이상한 꿈을 꿨다. 과거에 가족과 함께 살던 장소가 희안하게도 남아있는 것이었다. 여행지처럼 과거의 장소를 다녀올 수 있었다. 그곳은 앞으로 없어질 곳이라 기억이 담긴 소중한 물건들을 챙겨야 했다. 기억하고 싶고, 챙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모든 물건을 담을 수가 없었다. 동생은 살아있었다. 내가 낡은 옷을 들어보며 "이걸 챙기는 어때?"라고 하자, 동생은 오래된 것이니 두고 가자라고 했다. 


 영혼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내가 상상한대로 나를 가끔씩 지켜볼 수 있을까. 죽고 나서는 미움도 슬픔도 모두 없다는데 정말일까. 억울하고 상처받은 마음은 풀렸을까. 아니면 정말 끝인 것일까. 가끔 상상하는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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