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단어. 인연 _ 2

두 번째 엄마가 생겼습니다.

by 아로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나의 아르바이트 목적은 용돈이었고, 용돈의 사용처는 핸드폰 통화료, 그리고 친구들과 노는데 필요한 여가비 정도였다.




그해 봄,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게 된 엄마는 항암치료를 위해 하시던 일을 모두 정리하셔야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그 먼 거리를 오가며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시는 엄마에게 용돈을 달라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던 나는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택했다.


그 당시 하루 서너 시간 일을 하면 한 달에 20만 원 남짓 벌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 돈도 꽤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아르바이트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병원생활이 힘드셨던 걸까, 결국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가을, 우리 삼 남매를 두고 몇 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가신 아빠를 따라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리고 나는 몇 달 후 대학생이 되었다.

내 나이 스무 살. 태어나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살게 된 나는 버스노선도, 동네 지리도 모르면서 아르바이트 자리 먼저 찾아 나섰다.


어느 날 갑자기 가장이 되어 동생 둘을 책임져야 하는 언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물려주고 가신 약간의 재산 덕분에 등록금이나 살 집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용돈 정도는 내가 벌어서 쓰고 싶었다.


대학교 수업 외 시간에 일해야 하다 보니 시간상 마땅한 자리는 호프집이나 편의점이 전부였다. 하지만 편의점은 동이 틀 때까지 일해야 했기에 하는 수 없이 호프집으로 알아봤다. 그 당시 같은 학과 친구가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너무 힘이 들어 3일 만에 관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아르바이트 장소를 고를 때에도 잔꾀를 부렸다.

-번화가 중심에 있는 호프집은 피할 것.
-규모가 큰 호프집은 피할 것.
-평소 손님이 많고 늦게까지 운영하는 호프집은 피할 것.

아르바이트 고르기 리스트가 어이없긴 하지만, 그래야 내 몸이 힘들지 않게 오랫동안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곳은 궁동 로데오거리 초입에 있는 [리치]라는 작은 호프집.

아르바이트생은 달랑 나 혼자.

사장님과 나는 함께 홀에서 서빙을 했고, 사모님이 주방에서 안주를 담당하셨다.

출근 시간은 오후 6시였지만, 5시 20분까지 오면 이곳에서 사모님이 해 주시는 맛있는 저녁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었기에 나는 웬만하면 일찍 출근했다.


사모님 음식 솜씨는 꽤 뛰어났다.

뭐든 잘 먹는 나를 딸처럼 예뻐하시며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무엇이든 뚝딱뚝딱해 주셨다. 그때마다 요리 솜씨가 좋았던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엄마 음식이 많이 그리웠다. 사모님은 그런 나를 위해 집에 가서 언니, 동생과 나눠 먹으라며 반찬도 더러 싸 주셨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사모님과 정이 많이 들었다. 출근하면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 시시콜콜 모든 이야기를 조잘거렸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남자친구 이야기도 비밀 없이 다 털어놓았다.


신메뉴가 생기면 사모님은 늘 내게 1번으로 먹여 주셨고, 추가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할 때에도 내 의사를 가장 먼저 물어보셨다.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생일 미역국을 끓여 준 것도 사모님이 처음이었다.

비록 사모님은 엄마보다 10살이나 어렸고, 나는 사모님 따님보다 10살이나 많았지만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엄마와 딸 같은 사이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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