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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Jun 14. 2024

잘 키웠어요.

육아에세이

분갈이를 하려고 집 근처 농원에 갔다. 칠순즘 되신 연세 지긋한 사장님께서 화분을 찬찬히 살피신다. 


"화분이 근사하네요. 이런 데서는 취급 안 하는 화분이에요. 어디서 사셨어요?"

"선물 받았어요."

"선물 받을 때 어떻게 키우라고 안내를 받았어요?"

"아니요. 그런 거 없이 회사로 배달 와서 그냥 키웠는데요."


추가로 새싹이 올라오던 겨울


2년 전쯤 남편이 회사 이직 했을 때 지인들로부터 화분 몇 개를 선물 받았다. 그중 문샤인 산세베리아는 남편이 지하철로 퇴근하면서도 무겁게 들고 와 집에서 키우는 중이었다. 


집에 온 기념으로 베란데에서 물을 주는데 화분 위쪽까지 물이 차올랐고 빠지지 않은 채 고여 있었다. 화분을 비스듬히 기울여 조심히 고인 물을 빼냈고, 그때 화분에 구멍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구멍 없는 화분은 처음이었기에 의아했지만, 다육식물이라 물을 자주 줄 필요도 없으니 그 뒤로는 물이 고이지 않도록 조절했다. 


분갈이하러 간 상태의 화분




2년 정도 되니 계속 새싹이 자라나고 가운데 꽃대처럼 보이는 무언가도 올라와서 분갈이를 해야겠다 싶었다.

이렇게 화분에서 나오게 된 문샤인 산세베리아!



"화분을 잘 키웠어요."

갑작스런 사장님의 칭찬에 나는 멋쩍어 웃는다. 옆에서 듣던 남편과 딸은 '오~' 그런 느낌으로 나를 바라본다. 


"화분 구멍이 없어서 과습으로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씩 조금씩 물을 잘 줬네요. 그래서 처음에 설명을 들었나 물어본 거예요. 그런 거 없이도 잘 키웠네요."


집에서 키우고 있는 20년 된 난초부터, 16년 된 산세베리아 등 식물을 보면 꼭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분 속 흙에 가려져 식물의 뿌리는 보이지 않지만 생각지 못한 시기에 새싹을 돋아내고, 꽃을 피운다. 언제 꽃을 피울지 화분을 돌보는 나는 알 수 없지만 식물이 자라기 좋은 편안한 환경을 갖춰주면 뿌리가 단단히 내려 있는 만큼 자신이 선택한 시기에 매년 새롭게 꽃을 피운다. 


식물마다 특색이 다르기에 물도 맞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햇볕도 마찬가지다. 옆집 화분이 꽃피웠다고 우리 집 화분도 꽃피우길 바라며 물 붓고, 햇볕을 더 쬐지 않듯이 우리 아이에게 맞추어 조절할 줄 아는 부모이고 싶었다. 아이가 가진 단단한 뿌리의 힘을 믿고 적당한 물과 햇볕처럼 필요한 환경을 제공해 주기. 그리고 뿌리의 힘을 믿고 지켜보기. 왜 빨리 자라지 않냐고, 왜 열매가 없냐고, 왜 꽃 피우지 않냐고 비교하며 흙 속 뿌리까지 흔들어 버리지 않기. 그래서 물 주다가 새싹이나 꽃봉오리를 발견할 때면 기분이 설렌다. 단단한 뿌리의 힘을 얻는 것 같아서. 



분갈이되어 여유로운 공간에 다시 심어진 문샤인 산세베리아를 보니 이 또한 근사하다. 


"잘 키웠네요!"

아이를 잘 키웠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더욱이 집 밖에서 주변인이 하는 그 말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가정이라는 은밀한 공간에서 엄마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어쩌면 아이만 제대로 알 수 있기에. 


내가 부모의 위치가 되어보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기억이 파헤쳐지면서 나의 부모를 다시 만나게 된다. 어른이 된 아이의 기억 속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 떠올려지는 엄마의 모습에서, 엄마 욕심대로 하지 않고 나를 위해주었다는 느낌을 간직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환경에서 다시 나눌 수 있다면 화분을 보며 설레었던 어떤 순간보다 가슴 벅찰 듯싶다. 



오늘도 뿌리의 힘을 믿으며 제정신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도록 글쓰며 마음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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